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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Apr 05. 2016

5일간의 독박육아

아내가 말레이시아로 간다. 5일간.

세 살, 아홉 살인 두 딸과 나를 두고서.     


모처럼 갖는 혼자만의 시간에 아내의 기분은 어떨까?     


-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에겐 <지금 몇 시야?>와 <숙제 남은 것이 있어?> 하는 두 가지 물음만 있다면 자기 일을 해내니까 엄마의 부재가 걱정되진 않는다. 물론 질문하는 나의 목소리에 화가 묻어 있거나 반복 질문으로 아이의 기분을 망치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 풀어지니까 괜찮다.    


문제는 아니 걱정은 둘째.

아직 주 양육자인 엄마에게서 분리되는 중이며 유독 밤에 잘 때는 엄마를 꼭 찾는 습성이 있다. 엄마가 없으면 혼자 자는 것이고, 그러면 호랑이가 나타난다나. 아빠와 언니가 구해준다고 하면, 못 들은 척 획~ 등을 돌리고 이불 위를 구르는 녀석이라 걱정이다.


    

우선, 요리에 약한 나는 5일간의 식단을 마련했다. 불안했던 아내는 국과 찌개를 만들어 얼려주었고, 과자와 아이스크림까지 준비해주었다. 사실 아이들에겐 과자와 아이스크림만 있어도 며칠은 거뜬하다. 물론 아내가 알면 엄청 혼낼 테지만.        


-

D-Day.

아내가 떠났다.     


택시를 기다리며 행여 아내가 걱정할까,

아이들이 환경 변화에 더 잘 적응하니까 어떻게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실은 나를 위한 말이었다. 잘 될 거야, 걱정 말자고!!!    


12시 30분 둘째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보고는 ‘엄마는 네 밤 자고 온 데.’ 하며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다.

기특한 녀석. 그래 오늘이 첫째 날이야.     


오후 4시가 되어 첫째가 돌아오고

평소처럼 첫째의 숙제가 끝나자 둘은 함께 논다.

아빠가 준비한 밥을 먹고, 씻어준 과일을 먹으며 책도 본다.     


9시. 갑자기 방에서 “엄마한테 갈래!”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놀란 나는 둘째 수면용으로 사용하는 만화영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보여준다.

세 살 인생에서 엄마 없는 고단함을 처음 느낀 녀석은 느린 노래에 르르 눈을 감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다.     


-

다음날 6시 50분.

평소보다 훨씬 일찍 둘째가 일어났다.

나와 첫째는 당황하지 않고 둘째의 눈치를 살핀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중 1국 같은 느낌이랄까?

평소와 다른 아침이다. 오늘은 어떤 수를 두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나?

평소 패턴과 다른 모습에 이 또한 육아의 묘미 아니겠냐며 애써 자신을 위로해본다.     

다행히 첫째가 언니 노릇을 제대로 한다.

아빠가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 동생과 놀아주고, 과일을 준비하면 TV를 보면서 아빠에게 쉬는 시간도 주었다. 숙제도 척척. 나는 확인하고 도장만 찍으면 된다.     


셋째 날도 6시 50분.

이번엔 첫째가 일어났다. 날씨가 흐린 일요일.

어제 집에만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다.     


실내놀이터 개장을 기다렸다가 바로 입장.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아이들도 맘껏 뛰고, 덩달아 나도 뛰어놀았다.

계획된 1시간이 2시간으로 늘어나면서 나의 체력도 바닥을 쳤지만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아내의 출장에 과한 긴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없이도 괜찮은데^^     



집에 갈 시간이 되자 아쉬운 듯 트램펄린에서 한 번 더 뛰겠다고 간 녀석들.

몸집이 큰 형아가 둘째 옆으로 지나자, 홀로 뛰어가던 녀석이 균형을 잃고 쿵.

무릎을 만지며, 눈물을 맺고는 ‘아빠~ 안아줘’ 한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선 땀범벅인 된 녀석을 씻기고, 로션 바르고, 옷 갈아입혔더니 기분이 좋아진 듯. 그런데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한다.

아~~ 놔~~~ 왜지??!     


왼쪽 무릎에 힘을 주지 못한다. 일단 어디선가 들은 RICE 요법(rest, ice, compression, elevation)에 따라 아이를 눕혀서 안정을 취하게 하고 살짝 냉찜질한 다음, 붕대로 묶어 다리에 베개를 받혀둔다.     


아뿔싸! 이때부터 생각지 못한 왕 놀이가 시작되었다.

둘째 옆에서 과자와 과일을 챙겨주고, 책 읽어 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복에 겨운 녀석이 좀 전까지 잘 놀던 언니에게 ‘하지 마~ 내꺼야’ 하며 심술을 부린다.     


응급실에 가야 할지, 가면 이 둘을 모두 데리고 가야 할지, 첫째만 남겨둘지.

내가 고민에 빠진 사이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급히 방문을 열어보니, 첫째가 울고 있다.

물어도 답이 없고,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들의 울음에 약한 이 아빠는 다시 멘붕~~!!!    


-

우는 언니와 상관없이 자기 책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둘째를 보고는,

첫째에 전력투구.    


엄마도 없고, 아빠는 동생만 돌보고.

첫째의 외로움이 폭발했던 모양이다.

겨우겨우 달래니 벌써 저녁이다. 휴~(에구에구)    


더는 아빠 신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둘째는 왕 놀이를 포기하고,

언니와 함께 밥을 먹고 놀이를 시작한다. 다시 휴~~~(다행이다)    


-

다음 날    

첫째가 등교하고,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병원을 찾았다. 아빠에게 안기고 허벅지에 앉아 있던 녀석이 의사 선생님 앞에선 잘 서 있다. 무릎을 툭 쳐보고 비틀어도 보지만 멀뚱멀뚱 ‘이 아저씨가 왜 그러지?’ 하는 표정이다. 아직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진 못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통증이 없어질 것 같다고 했다. 병원을 나오니 갑자기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어린이집에 가겠다며 아빠를 당황시킨다. 휴~    


다시 집에 돌아오니 이제야 보이는 과자부스러기, 널브러진 책, 장난감, 인형, 빤 것인지 빨 것인지 알 수 없는 옷가지들. 부랴부랴 준비해서 어린이집에 보내고는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청소기를 돌리고는 이불까지 털고 나니, 따스한 아메리카노가 생각난다.

후~ 후~ 호르륵.


이 순간이 어찌나 감사한지.    


저녁에는 엄마가 오기 전 마지막 날이라며

첫째가 좋아하는 치킨을 주문하고

둘째가 사랑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빠도 즐겨보는 만화영화를 보면서

맘껏 자유를 느꼈다.     


내일이면 아내가 온다는 반가움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너무 금방 지난 것 같은 아쉬움도 있고,

물론 다시 독박육아를 하라면 뒤돌아 울지도 모르지만 ㅠㅠ    


첫째에게 받은 감사편지와 둘째에게 받은 침이 가득한 뽀뽀에

피곤이 싸악~^^        


* 밤이 되자 나의 무릎과 허리는 뻐근해졌고 아내가 오는 내일엔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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