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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May 21. 2016

봄 소풍의 청일점

아빠들이 모르는 봄 소풍의 즐거움

7시 40분. 아내는 출근했고 유부초밥을 만드는 나의 손은 분주한 마음과는 달리 느리기만 하다. 조물조물 겨우 완성하고 아내가 준비해둔 방울토마토와 델라웨어 포도를 가방에 넣는다.

얼음을 품은 물, 기저귀, 물티슈, 모자, 여벌 옷, 돗자리 그리고 선크림을 준비한다. 앗, 둘째 쭉쭉이가 좋아하는 초코 과자와 만일의 사태(사람이 많은 곳에서 울거나 떼쓸 경우)를 대비해 마이쥬도 함께 챙긴다.      

   

주섬주섬 이렇게 외출을 준비하는 이유는??

두둥두둥^^ 봄 소풍!! 3살 쭉쭉이가 어린이집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간다.        



쭉쭉이도 소풍이 기대되었는지, 평소와 달리 7시에 일어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원복도 입고, 자기 가방도 챙겼다, 이제 양말을 신으면 나갈 수 있다.         


아빠~ 분홍 양말 어딨어?
응? 아~ 어제 신어서 빨래통에 있어.
아~ 신을래! 신을래!    



세탁하지 못해 다른 것을 신어야 한다고 해도, ‘분홍 신을래’만 반복하는 쭉쭉이. 오늘은 타협의 기미도 없다. 만병통치약 마이쥬를 통해 유혹해 보지만, 눈물만 뚝뚝! 그러다 ‘신을래!’가 ‘안 갈래!’로 바뀌었다. 5분 거리의 어린이집이지만 이제 7분 남았다.   
  

으앙~~(이건 아빠 울음소리)


욱하는 것이 치밀어 오르지만 이를 토하면 아이도 나도 감정이 엉클어져 정말 소풍을 가지 못할 것 같다. 펑! 하고 구세주처럼 ‘타요’가 떠올랐고 다행히도 반응하는 녀석. 아이의 손엔 내 휴대전화가 올려져 있고, 나의 양팔엔 그 아이와 두 개의 가방이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

달려 달려서 겨우 도착!!    


우리보다 늦은 사람이 있었지만, 약속보다 살짝 늦은 탓에 미안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는데,     


앗! 기사님만 남자다^^

분명 원장 선생님이 나 말고도 아빠들이 오신다고 했는데, 으앙 으앙~~        



달려 달려 북서울 꿈의 숲에 도착. 돗자리를 펴서 앉고는 서로를 소개한다. 선생님의 소개에 이어 아이와 엄마 혹은 할머니가 인사드리는데, 진행요원 같은 아빠가 일어나 쭉쭉이와 인사한다. (웃음) 남들 인사에 무관심한 쭉쭉이는 개미를 만지려 한다. 손으로 원을 만들어 개미를 감싸고 손등으로 올라오면 아이 얼굴에 가져가는 놀이를 했더니 주위 아이들도 조금씩 모여든다.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도 다가가면 도망가는 수줍은 아이, 손을 쳐서 개미를 떨어뜨리는 터프한 아이, 스멀스멀 두 손가락으로 개미를 잡으려는 무서운 아이까지. 우리는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지만, 개미 하나로 친구가 되었다.     
 

소개가 끝나자 곧이어 게임을 시작한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녔을 때는 아내도 나도 소풍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저 간식 먹으며 공놀이 하고, 점심 먹고는 자유 놀이하다가 귀가하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바구니에 콩주머니 많이 넣기, 신문지 격파하기, 매달린 과자 먹기, 튜브 썰매 타기, 탑 쌓기처럼 아이와 엄마가 함께 하는 게임 외에도 이인삼각이라는 엄마들만을 위한 경기도 있었다.     


엄마들이 가득한 이곳에 투박하게 생긴 아빠가 있었으니, 모든 게임에 빠질 수가 없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지고만 있으니. (웃음) 특히 이인삼각 경기에서는 뜻밖의 청일점(?)에 당황한 4세 반 엄마와 겨우겨우 걸어왔기에 결과는 꼴찌!!!    


    

다행히 점심시간이 되었고 쭉쭉이와 화장실에 다녀오니, 다들 식사 중이다. 함께 꼴찌 한 엄마가 우리 부녀의 자리를 마련해 주어 함께 식사를 시작.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면서 자연스레 일상도 함께 나눈다. 물론 출발은 칭찬과 함께 말이다. 마트에서 산 유부에 밥을 넣어 만든 유부초밥을 보고는 직접 만들었냐며, 대단하다고 칭찬. 이거 산 거라고 하니, 밥은 하지 않았냐고, 원래 유부초밥은 사서 밥 넣는 거죠, 하며 묘하게 칭찬. (칭찬은 아빠를 춤추게 한다!!!)    


쭉쭉이가 둘째라는 나의 소개에 둘째를 기다리는 엄마,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엄마, 7월에 만나기로 예정된 엄마들이 하나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9살 3살인 우리 두 딸 이야기에, 6살 차이지만 동성이라 좋을 것 같다는 말씀에 가끔 깜찍하지만, 때론 끔찍한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웃는다.     


육아휴직 후에 지금은 유연 근무를 하며 육아하는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를 걱정하고 있었다. 돈과 승진도 이래저래 고민이라 말하는 모습에선 아빠인 나도 어찌나 공감하고 몰입하게 되던지. 입사 후배가 먼저 승진해 같은 팀에 있다고 하던 아내의 복직했던 날도 생각나고. 독박 육아에 지친 엄마의 한숨에 같이 한숨을 더하기도 했다.         



어느덧 돌아갈 시간.     


쭉쭉이와 친구들은 탱탱볼, 동화책, 비눗방울, 그림판 등 선물도 많이 받았고,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을 가득 담았다. 아이의 뛰노는 모습을 가슴에 담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이렇게 좋은 것을 그동안 엄마들에게만 양보했던 아빠들에게 이 순간의 기쁨을 알리고 싶다.

월드컵 축구경기를 TV가 아닌 현장에서 보는 것만큼 긴장되고 흥미롭다고 할까, 평생의 추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도 잊지 마시라!^^    


소풍에서 돌아와 잠든 아이를 눕혀두고 혼자 마시는 아이스커피는 퇴근 후 동료와 함께 하는 시원한 맥주보다 137만 배 정도 자유롭고 충만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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