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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Sep 21. 2016

안전이냐? 모험이냐?


 “Ship in a harbo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 John A Shedd



엄~마~ 하는 울먹임과 함께 한 아이가 다급히 뛰어온다. 턱을 잡은 손으로 흐르는 피를 보고 놀란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황급히 응급실로 향한다. 다행히 봉합 치료 후 귀가했고, 며칠 고생하면 괜찮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4년 전 첫째 쑥쑥이도 그랬다. 거실 의자에 앉아 TV를 보다가 툭 하고 옆으로 넘어졌다. 하필 그곳에 유리문이 있었고, 또 하필 그게 쨍그랑 깨졌다. 그리고 머리에선 피가 흐른다. 손수건으로 감싸고 응급실에 도착한 우리는 숨 가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사를 기다린다. 찢어진 두피 사이로 유리조각이 신경을 건드리지는 않았는지를 검사한 다음, 나와 간호사에게 꼼짝없이 눌려진 쑥쑥이는 10여 바늘의 치료를 받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굳이 어린이 유괴나 폭력, 차량사고 같은 사건사고 소식이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혹은 내 아이가 넘어져 피부가 찢어지는 일이 발생하면 더더욱 아이의 안전에 민감해진다.

  



오랜만에 놀이공원을 찾았다. 신나는 놀이기구를 보며 미소로 가득해야 할 쑥쑥이의 얼굴이 이상하다. 눈은 상하좌우 없이 내달리는 롤러코스트를 향하는데, 발걸음은 익숙한 회전목마 쪽이다. 자전거 보조 바퀴를 땔 때,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때도 그랬다. 먼저 타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다 막상 하고 나면 해지는 줄도 모르고 타는 녀석이 오늘도 주저한다.  


자신감 있게 도전하는 모습 대신 조심스레 멈칫하는 아이를 보며 아빠를 닮아서 겁이 많은 건가? 하다가, 수전 G. 솔로몬의 「놀이의 과학」(2016, 소나무)을 보면서 아빠의 안전장치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변했다. 어쨌든 아빠 때문인 것은 똑같지만 말이다. 


이 책은 다양한 모험 놀이터를 소개한다. 목공소 같이 톱, 망치, 못이 있어 아이들이 직접 시소를 만들고 페인트 칠을 할 수 있는 놀이터, 높이가 달라지는 콘크리트 봉우리로 밧줄을 사용하거나 엎드려 기어오르는 놀이터를 보여주며, ‘과잉보호 속에서 늘 불안해하는 아이들은 불안의 정도가 갈수록 심해질 수도 있다. 두려움과 마주해 이를 통제할 기회를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 말한다. 여기서 내 머리는 쿵쿵. 우리 동네의 놀이터와 전혀 다른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불안감에 아이를 따라다니며, “그쪽이 아니야. 여기서 놀아야지.” 하는 아빠 없이도 밝은 미소로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 충격이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세상이다. 지금 당장 타고 싶은 그네 앞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거나, 돌부리에 걸려 혹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상처가 나기도 하고, 때론 친구들과의 오해로 펑펑 눈물을 쏟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 배움터이자 생활의 공간에서 부모가 정하는 지점에서,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놀이를 한다면, 자립해서 살아갈 세상에는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 아이들은 스스로 위험을 느끼고 저울질하며 도전의 수위를 정하기도 한다는데, 위험에 노출되고 여기서 배우는 즐거움을 ‘안전’이란 이름으로 부모가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소한 모험을 상상해본다.  


놀이터에서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물론, 아이들이 날씨와 상관없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옷을 선택할 수 있고, 놀이와 학습의 시간관리나 공부와 운동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갈 수 있게 한다. 아침식사 대신 10분의 늦잠을 선택하더라도 독립된 결정을 존중한다. 


그리고 아빠는 상사의 눈치를 뒤로 하고 정시에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 때론 황당한 회사 일을 이야기 소재로 꺼내어 가족 모두가 함께 분노하게도 하고, 심지어 일 년에 한 번은 육아에 지친 아내를 홀로 여행 보내고 온전히 아이들과 보내기로 한다.  


생각하는 잠시 동안에도 ‘그래도 될까?’,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며, 경쟁에서 뒤쳐질 것 같은 불안감과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하지만 삶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스스로 판단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라면, 오늘의 모험이 곧 내일의 안전이지 않을까? 



그리고 

20년 후 아내와 자식이 함께 하는 생활을 꿈꾸는 아빠라면,  

육아 참여만큼 든든한 노후대책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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