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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Oct 08. 2016

빈자리

둘째 쭉쭉이와 벤치에 앉았다.

언니가 남긴 과자를 먹으며

지나가는 개미에게, 꿀벌에게, 나비에게

수다스럽게 외계어를 쏟아낸다.
     

우리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세 살 남자아이와 할머니가 곁에 와서 앉는다.     



요즘은 아빠들이 아이들을 더 잘 보는 것 같아.    



하며 먼저 말을 하시기에,

멋쩍은 나는 “아이가 몇 개월이에요?” 하고 묻는다.     


어르신은 딸의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 대구에서 오셨다고 했다.

주말마다 대구로 오가는 것이 힘들어 이제는 2주에 한 번씩 가신다고.

“아이고, 할아버지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최근엔 딸의 야근이 잦아져 집에 오면 10시라고 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오면 그리던 품에 안겨 할머니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딸은     


엄마 얼굴이 많이 상했네.    


하지만, 어르신은 그동안 딸의 마음이 많이 상한 것을 알기에 그저     

“괜찮다. 괜찮다.” 고 하신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자식 자랑까지 끝내시고는,

첫째 손주를 태권도에 보내야 한다며 일어서며

“갔다 올게요.” 하신다.     



갔다 올게요. 갔다 올게요......    



8시 전에 딸을 출근시키고, 6살과 3살 남자아이를 돌봐야 하는 일상에서 누군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함께 이야기하 순간 속에서 처음 보는 나를,

어쩜 육아 동지라고 느꼈을지 모르겠다.        
 

사위는 평택에 있어 딸과 주말부부이고, 자신은 손주 돌보느라 주말부부이라는 말씀에서,

생각한다.


옆의 빈자리, 누가 있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기를 쓰고 짝을 찾았는데,

빈자리를 만들고 다른 이로 채우고 또 빈자리가 생기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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