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스물한 살, 내가 나를 돌아보는 밤

2003년 8월 6일

by 퇴근 후 작가

입대를 하루 앞둔 밤. 생각이 많아졌다.
입영통지서와 신분증도 챙겨놓았고, 머리도 짧게 잘랐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작별 인사를 마쳤다.
이제 정말, 입대만 남았다.

괜히 마음이 복잡해져 조용히 방에 혼자 앉아 있자니,

문득 스물한 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동안 어떻게 성장해왔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군대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전, 지금 이 시점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난 날을 돌아보았다.
마치 낯선 길로 들어서기 전, 골목 어귀에서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듯이.


나는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유치원 시절 흔치 않았던 개근상을 받았고 초등학교 시절엔 독후감 대회며 웅변대회며 나가면 늘 장려상이나 우수상을 받아왔다.
한자 급수도 7급부터 1급까지 꾸준히 땄고, 방학숙제 탐구생활 우수상도 두 번이나 받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반장과 부반장도 맡았고, 모두가 꺼려했던 교통봉사상도 받았다.
선생님들은 나를 “책임감이 강한 아이”, “매사에 성실한 학생”이라고 표현했다.

친구들 사이에선 때로는 활발했고, 때로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기도 했지만, 맡은 일은 늘 끝까지 해내려 했다.
나 자신도 그런 평가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잘하는 것’이 내 방식이었다.
교과서 바깥에 있는 일도 재미있었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학업 성적은 우수한 편은 아니었다.
때로는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었고, 계산력이 약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공부 바깥의 세계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에 만족감을 찾아가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운동을 좋아했고, 미술시간에 만들기를 좋아했고, 글짓기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중학교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축 실적이 우수하다고 표창장을 받은 적도 있었고, 개근상은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큰소리 내는 법 없이 조용히 다녔지만, 선생님들께 혼난 기억도 거의 없었다.
평소 품행이 단정하다고 칭찬을 들었고, 나름대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성실함과 조용한 책임감이 유일한 장점인 학생이었다.
1학년때는 반장을 맡기도 했고, 3학년때는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방송반 활동을 하며, 선행상, 노력상, 독서경시대회 장려상, 시화 부문 우수상, 과학표어대회 우수상 등 작고 다양한 성과들을 하나씩 쌓아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매년 꾸준히 뭔가에 도전했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쁘고 기억에 남는 건, 내 진심을 알아봐 준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생활기록부 한 줄이었다.


“이 학생은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활동을 해준 학생이며,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뜻을 펼 수 있는 가능성이 큰 학생입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온 삶이 ‘성공’이나 ‘결과’보다
‘태도’와 ‘진심’으로 기억되는 것이 감사하다.
나를 뽐내기 위해 쌓아올린 기록이 아니라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느낌.


물론, 때로는 조용하다고 오해도 받았고
기준이 뚜렷하다는 이유로 주변과 부딪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해왔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 함께 있는 이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


그런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던 내가 어느덧 스물한 살의 성인이 되어 지금 군대를 간다.
더 거친 세계, 더 낯선 세계에서
지금껏의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있다.
나는 이미 수많은 시간 동안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조용하고 성실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내 안에 단단한 뿌리처럼 남아 있다는 것.


이제 그 뿌리를 믿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보려 한다.
스물한 살,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의 나를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도.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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