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8
처음으로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날이었다.
소대장님이 종이 한 장과 볼펜을 나눠주시며,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하셨다.
머뭇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훈련소 생활은 정신없고 숨가쁘다.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가는데, 정작 내 마음은 천천히 움직인다.
부모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아침마다 깨우러 오시던 엄마,
말없이 지켜보다 한마디 툭 던지시던 아빠.
지금쯤 어떤 표정으로 내 걱정을 하고 계실까.
무뚝뚝하게 쓰면 서운하실 것 같고,
너무 솔직히 쓰면 괜히 걱정하실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 쓰기로 했다.
부모님께.
충성! 훈련병 이준서입니다.
그동안 건강히 잘 계셨죠? 8월 7일 날 입소대에 입소해 4박 5일 동안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고 지금은 훈련소에 왔습니다. 입소대에서는 편했는데 지금 있는 훈련소는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자유시간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시간도 잘 가고 훈련도 받을만하고 동기들과도 많이 친해졌고, 밥도 먹을만 해서 지낼만 합니다.
며칠 전에는 군대예절, 제식훈련, 그리고 오늘은 총검술을 배웠습니다.
총도 처음 잡아보고, 총을 가지고 하는 동작을 배웠는데 총이 생각보다 너무 무겁고 매일 똑같은 것만 반복하니까 사실 재미는 없습니다. 하하.
군대에 와서 직접 빨래도 하고 군화도 닦았습니다.
아직은 처음이라 빨래를 어떻게 하는 건지 군화를 어떻게 닦는 건지 몰라서 눈치껏 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들을 여기에 와서 하려고 하니 어렵기도 하고 그 동안 부모님께서 집안일 하면서 얼마나 힘이드셨을까 생각하며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군대 간 친구들이 모두 같이 힘이 든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훈련이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집 앞 공원에서 운동을 해서 그런지 즐거운 마음으로 받고 있습니다.
참, 군복 입고 단체사진, 개인 독사진을 찍었는데 한 사람당 1초 만에 빠르게 찍어서 표정 관리가 안 된 사진을 보낼 겁니다.
아직은 군복도, 손 동작도 어색하지만 6주간의 훈련이 끝나면 모두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가족 중에는 아픈 사람은 없겠죠?
부모님, 친척 모두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합니다.
낚시도 하고 싶고, 사이다, 떡볶이, 계란 후라이도 먹고 싶은데…
입소대 연못에서 물고기 구경한 걸로 만족하고, 맛스타(군용 음료수) 복숭아 맛으로 사이다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편지 쓸 시간이 많지 않아서 자주 못 보내겠지만 틈틈이 자주 소식 전하겠습니다..
건강히 안녕히 계세요.
2003년 8월 14일.
아들 이준서 올림.
편지를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펜 글씨가 얼마만인지, 글씨도 삐뚤고 말도 서툴렀지만, 그 한 줄 한 줄에 진심을 담았다.
부모님이 이 편지를 읽고 한숨 돌리셨으면,
‘그래, 우리 아들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미소 지으셨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 기억의 조각
서툰 글씨로 꾹꾹 눌러 쓴 진심.
편지는 그저 안부가 아니라,
먼 곳에 있는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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