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106번 훈련병 편지왔다

내 이름으로 충성한 D+9

by 퇴근 후 작가

훈련소에서 편지를 받는다는 건,
하루 중 가장 특별한 순간이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였다.
총검술 훈련을 마치고 구보를 한 바퀴 돌고, 군복에 땀이 줄줄 흘러내릴 때쯤,
소대장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106번 훈련병, 편지 왔다!” 106번은 나다. 여기서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린다.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했다.
진짜 왔구나.
내가 소포와 함께 쓴 그 첫 메모를 엄마가 받은 거다. 그리고 그걸 읽고 바로 답장을 써주신 거다. 아니면 군 입대 이후 아들 걱정에 편지부터 먼저 쓰셨을지도...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뜯는 손이 떨렸다.
익숙한 글씨.
늦잠하는 나를 위해 늘 외출전에 음식 위치, 당부사항을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두던 쪽지의 그 필체.
엄마였다.
하얀 종이에 눌러쓴 문장 하나하나에, 엄마가 나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셨는지 느껴졌다.


그날 저녁, 나는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 구석에 앉아 조용히 그 편지를 읽었다.


사랑하는 아들 준서에게.
더위에 어떻게 지내는지. 다들 무더위에 군에 간다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잘 지내고 있지?

형이 군대에 가서 형에게 편지를 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 어느새 동주에게도 편지를 쓰는 날이 왔구나.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생활은 괜찮은지, 모든 것이 궁금하고 걱정이 앞서는구나.

네가 입대할 때 입고 간 옷은 5일 뒤인 12일에 잘 도착했단다.


지금은 컴퓨터가 잘 되어 있어서, 형이 군대에 갔을 때와는 다르더라.
연대와 중대 정보가 컴퓨터에 나와서 주소도 확인할 수 있고, 엄마가 형에게 주소도 알려주고 이렇게 너에게도 몇 자 적게 되었단다.

그리고 요즘은 컴퓨터에 교육 일정도 1주차부터 4주차까지 내용이 나와서, 이번 주에는 어떤 훈련을 하겠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더라.


지난번 옷 속에 함께 보낸 쪽지도 잘 받았다.
그때는 대기 시간이라 긴장되고 지루한 데다, 교육 시간엔 정해진 틀에 맞춰 움직이려니 꽤 힘들지?


준서야, 이곳 생각하지 말고 네가 훈련받는 동안 충실히 잘해서 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나기를 바란다.엄마가 먼저 중대장들 군편지도 받기 전에 이렇게 적다 보니, 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곳은 무더위가 약간인데 네가 있는 곳은 어떤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가만히 있고 너는 움직이다 보니 더 덥게 느껴지겠지.

더위도 많이 타는 아들..
이곳 가족 모두 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어.
네가 없으니 집안이 썰렁하고 이를 데 없다.

준서야, 훈련 잘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바라며 다음에 다시 편지할게.

2003년 8월 15일
엄마가.


편지를 읽고 나니 웃음도 나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의 문장은 늘 그렇듯 담백했고, 군더더기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들 사이사이에,
보고 싶은 마음, 걱정하는 마음 그리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소리 없이 흘러넘쳤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엄마가 나를 부르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기억의 조각

한 장의 편지 속에 담긴 엄마의 목소리.
글씨는 눌러 썼고, 말투는 담백했지만
그 안에는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공감하셨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다음 편을 함께해 주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7화] 편지라는 다리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