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16
부모님께,
오늘로 입소한 지 16일째입니다. 이번 주에 편지 금지령이 내려서 그동안 편지를 못 썼습니다. 어제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요즘 날씨가 무척 변덕스럽습니다.
매우 맑았다가 갑자기 비가 오고, 비가 오는 와중에도 햇빛이 쨍쨍 내리쬐며, 불과 10미터 앞에서는 비가 내리는데 제가 서 있는 곳에는 비가 오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군대라는 곳은 참 신기합니다.
며칠 전에는 오전 8시에 나가 저녁 7시 30분까지 밖에서 ‘경계’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훈련 자체는 힘들거나 짜증나는 점은 없었는데 그날 비가 많이 내려 ‘판초우의’라는 우비를 입었는데 방수가 잘 되지 않고 냄새도 심해서 찝찝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헤지고 낡은 오래된 우의였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훈련을 받고, 정신교육 강의를 들으며, 저녁에는 수양록(일기)을 작성하며 지내니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고 있습니다. 며칠 뒤면 벌써 3주차, 주기표에 3줄을 색칠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주말에는 교회에 가는데, 이상하게도 교회에 다녀오면 사회 생각이 많이 납니다. 사실 가서 잠만 자고 오긴 하지만요.
낚시하던 생각, 물고기 키우던 기억, 집에서 삼겹살 먹던 장면도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잘 적응하고 있고, 동기들과도 친해져서 요즘은 밤에 떠들다가 매일 걸려 팔굽혀펴기 30개씩 하고 자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이 된다고 하던데, 여기 와서 8월 7일 입소한 날부터 하루하루가 다 추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비록 어제 있었던 일이고 엊그제 일이지만, 매일 재미있는 일이 많아 군생활도 견딜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편지를 자주 쓸 수 없으니 늦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PS. 편지지, 우표, 돈은 충분히 있으니 더 보내지 마십시오. (처음에 받은 돈은 모두 가지고 있고, 혹시라도 더 발견되면 안 됩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나니, 고향과 가족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졌다.
먼 곳에서 보내는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부모님께 닿기를 바래 본다.
✒️ 기억의 조각
비 오는 날 입은 낡은 판초우의처럼,
군생활은 종종 불편하고 낯설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과 추억은 자라고 있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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