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타자기 너머의 사랑

내 이름으로 충성한 D+15

by 퇴근 후 작가

아빠가 보내온 첫 편지를 받았다.

펜 글씨가 아닌 컴퓨터로 타이핑한 편지였다.

평소 아빠가 독수리 타법으로 치시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긴 편지를 정성껏 써 보내셨다는 생각에 감사하면서도 타이핑한 편지를 보니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기도 했다.

편지를 펼치자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랑하는 아들 준서에게,

보내준 편지는 잘 받았고, 몸 건강히 힘든 훈련에 재미있게 잘 적응하고 있다니 참 대견스럽구나.
두 아들이 모두 군대에 가 있으니 집안이 많이 허전하구나.

준서야, 훈련 받느라 힘들지? 그리고 고향에서의 생활도 많이 생각나지?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내가 논산 훈련소에 있을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훈련소 생활은 학교생활처럼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이라 힘들고 지루하지.
전우들과 훈련을 마치고 어디로 배치될지 걱정하는 마음도 누구나 다 같단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배우는 것은 참 많아. 어려움을 이겨내고 협동심을 키우며 전우애를 느끼면서 생활하면 6주는 금방 간다.
무엇보다 매사를 즐겁게 대하는 마음가짐이 모든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는 무기란다.
어차피 받아야 할 훈련이니 즐겁게, 재미있게 지내거라.
힘들어도 잘 이겨내야 한다.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 이준서, 힘내라.


식구들은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
고모도 생각보다 결과가 좋아 약으로 치료를 하고 계시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직장생활 잘하고 있고, 아침마다 산행하며 준서 생각하며 다닌다.
엄마도 봉사와 집안일 을 하며, 항상 동주 걱정하시면서 건강히 지내고 있다.
형도 군대에서 처음 편지 받았을 때처럼 준서 편지를 자랑한다고 한다.

어제는 엄마와 대학교에 가서 휴학계를 냈다.
오는 길에 집에 있는 어항이 허전해 보여 ‘네온’이라는 이름의 물고기 25마리를 사와 넣었더니 어항이 꽉 찼다.
준서가 휴가 나올 때까지 잘 키우면 많이 자랄 거다.


준서야, 아빠도 사실 너를 군대 보내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힘든 훈련도 잘 하고 있다니 고맙다.
몸 건강히 훈련소 생활 잘 적응하며 지내거라.
걱정도 많이 되지만 아빠는 네가 분명 잘 해낼 거라 믿는다.
잘 있어라. 아침에 기상 시간 맞춰 일어나기 힘들지?


2003년 8월 21일
준서를 사랑하는 아빠가.


편지를 읽으며 아빠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군대라는 낯선 곳에 있는 나를 생각하며, 가족 모두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또 나에 대한 믿음과 응원을 담아 보내주신 그 정성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빠의 타자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편지는, 먼 거리에서도 늘 내 곁에 있다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 기억의 조각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이고, 또 고마운 일이었다.

타자기를 두드린 아빠의 손끝에서

나를 믿고 있다는 확신이 전해졌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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