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79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오늘은 전차 조종 ‘기본코스’ 실습을 했습니다. 어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연습했던 기억을 더듬어 조종석에 앉았고,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컸던 건 ‘이번에는 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조종한 기본코스는 90도 커브 돌기, 저속에서 고속으로 변속하기, 그리고 직선 주행이었습니다. 눈으로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조종석에 앉아 실제로 움직이다 보면 순간순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꽤 많습니다. 그래도 연습의 효과였는지 전체적으로 실수 없이 잘 마무리했고, 조교에게 칭찬도 받고,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하루였습니다. ‘오늘은 정말 내가 수고했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실습이 끝나자 조교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오늘 네가 전체 교육생 중에 제일 잘했어”라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낸 핫브레이크 초코바 하나를 슬쩍 제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따로 말은 없었지만, 그 ‘따봉’ 한 번과 초코바 한 조각은 오늘 하루의 피로를 모두 녹여주는 선물 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잘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참 기분좋게 느껴졌습니다.
내일은 ‘숙련 코스’ 실습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직 코스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동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더 복잡하고 고난도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더 빠르게, 더 정밀하게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긴장도 되지만, 오늘처럼만 집중해서 조종하면 괜찮을 거라는 자신감도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군복을 입고 거대한 전차를 조종하고 있는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점점 군인이 되어가고 있구나.’ 여전히 민간인의 티를 완전히 벗은 것 같진 않지만, 아직도 내가 이런 전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잘 안 나긴 합니다. 하지만 조종석에 앉아 전방을 응시하고 있으면, 아주 조금씩은 내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펴지고, 마음가짐이 조금씩 군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요.
2003년 10월 24일
아들 이준서 드림
✒️ 기억의 조각
치켜든 엄지손가락 하나,
초코바 한 조각.
그것만으로도 오늘 나는, 군인 같았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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