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78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오늘 아침에 잠깐 전화드린 것처럼 지금은 ‘영신’이라는 교육장에 와 있습니다. 상무대에서 버스로 약 40분쯤 떨어진 곳으로,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론 교육이 시작됐고, 이어서 전차 조종 실습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이 제가 처음 전차 조종을 해보는 날이었습니다. 철로 된 거대한 기계 안에 몸을 싣는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있었고, 조종석에 앉기 전까지는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동을 걸고 전진·후진을 반복하며 손발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두려움은 점점 흥미와 재미로 바뀌었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전차가 천천히 움직이는 그 감각이 묘하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실습 중간중간 조교가 “잘하고 있어”, “좋아, 잘한다”며 격려를 해줬는데, 그 말이 단순한 칭찬 이상의 위로처럼 다가왔습니다. 내가 해낸 것에 대해 누군가 인정해주는 순간이라는 건, 이 안에서도 여전히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기본 도로 주행 실습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처럼 전진·후진뿐만 아니라 코스를 따라 조종해야 하다 보니, 조금 더 복잡하고 긴장도 클 것 같아요. 전차라는 게 워낙 무겁고 위험한 장비이기도 해서 작은 실수에도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하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임하려 합니다.
지금은 상무대 교육 4주 차에 접어든 시점입니다. 몇 주 후인 7주 차가 되면 다시 이곳으로 와서 조종수와 포수로 나뉘어 재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 교육은 8박 9일 일정으로 진행되고, 그 후에는 외박이 주어집니다. 외박 일정이 정확히 정해지면 그때 다시 전화로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몸 따뜻하게 챙기시길 바랍니다.
2003년 10월 23일
이병 이준서 드림
✒️ 기억의 조각
거대한 전차보다
더 무거웠던 건
내 마음속 두려움이었다.
오늘 나는 그 무게에 처음 시동을 걸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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