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전차병의 첫 질주

내 이름으로 충성한 D+80

by 퇴근 후 작가

부모님께.


오늘은 영신에서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숙련 코스’ 실습을 마치고 오전 교육을 끝으로 다시 상무대로 복귀했습니다. 어제까지는 단순한 조작 훈련에 가깝다면, 오늘은 한층 더 실제 운용에 가까운 고난도 코스를 경험했습니다. 어제 조종했던 기어 변속 구간과 90도 커브는 물론이고, 오늘은 여기에 270도 회전과 오르막·내리막이 반복되는 경사 코스가 더해졌습니다. 시간 관계상 연습은 단 한 번뿐이었고, 바로 이어서 시험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긴장도 컸습니다.


게다가 먼저 실습을 마친 동기들이 “진짜 어렵다”, “장난 아니다” 같은 말을 하며 부담을 얹어놓은 터라 조종석에 앉기 전까지는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차가 엔진음을 내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긴장감은 어느새 두근거리는 재미와 짜릿한 스릴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막상 조종해보니 코스 자체는 어제보다 복잡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속도였습니다. 오늘은 실전처럼 더 빠른 속도로 코스를 돌았고, 그 덕분에 훈련장이 아니라 실제 전장을 달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전차를 몰며 커브를 돌고, 언덕을 오르내리며, 바람이 철판을 타고 손끝에 닿는 듯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결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첫날부터 오늘까지 전반적으로 잘 해냈고, 점수로만 본다면 1구대 48명 중에서도 상위권, 정확히는 2등 정도의 성적이라고 들었습니다. 훈련 초반에는 사실 전차에 대해 별다른 흥미도 없었고, 커다란 기계 앞에서 겁부터 났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질주하다 보면, 이 거대한 쇳덩이와 내가 조금씩 하나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전차병’이 되어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고, 거기에 약간의 자부심도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상무대로 복귀한 오후에는 점심을 먹고 짐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복귀와 동시에 들려온 소식은 다소 아쉬운 내용이었습니다. 당분간 전화 사용 금지, PX 이용 금지, TV 시청 금지, 말하자면 다시 훈련소 모드로 돌아간 셈이죠. 물론 이전처럼 불편한 환경은 아니지만, 한동안 누렸던 작은 자유들이 사라졌다는 게 조금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편지 쓸 수 있는 시간은 있으니까, 기회 될 때마다 소식 전하겠습니다.


이번 영외교육은 사고 없이 잘 마무리했고, 새로운 경험과 자신감을 얻은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하나의 전환점처럼 느껴지는 일주일이었어요.


아버지, 어머니, 형 모두 건강 잘 챙기시고,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으니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2003년 10월 25일
아들 이준서 드림


✒️ 기억의 조각

처음엔 낯설었고, 무서웠고,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전차와 한 몸처럼 달렸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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