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108
차갑고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전차와의 첫 만남.
그 낯설고 위압적인 쇳덩어리를 마주했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8주간의 상무대 교육도 끝났다.
후반기 교육은 훈련소보다 다소 느슨해진 규율과 실전 중심의 훈련으로 채워졌지만,
낯선 무기체계와 복잡한 지형 훈련 속에서 긴장감을 놓을 수는 없었다.
훈련소 시절에는 매직으로 매주 한 줄씩 ‘주차 표시’를 색칠했다면,
이곳 상무대에서는 노란색 명찰 위에 8주차에 맞춰 노란 스티커를 하나씩 붙이는 방식이었다.
훈련소와는 방식만 다를 뿐, 매주 스티커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이번 주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묘한 안정감이 따라왔다.
처음엔 불편했던 생활도, 어색했던 동기들과의 관계도
이제는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던 시절을 지나, 우리는 서로의 말투와 잠버릇, 표정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소대장님의 구령 흉내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고,
또 누군가는 야간 근무 후 사회시절 있었던 에피소드를 꺼내
침상 위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함께 훈련을 받았던 동기들로부터 손편지를 받았다.
작은 메모지에 꾹꾹 눌러쓴 그들의 진심이,
마치 멀어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마음처럼
따뜻하게 가슴을 눌렀다.
각자의 부대로 흩어지는 이 순간,
말로 다 하지 못한 고마움과 응원이 짧은 글 속에 담겨 있었다.
To. 준서
항상 몸 건강하고 나중에 꼭 만나자! 그동안 정말 즐거웠다. 너를 군대에서 만나서 너무 좋았다. 자대가서도 여기 생활처럼 잘 지내고 OO이란 이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비록 자대는 같이 가지는 못하지만 너하고 여기 상무대에서 있었던 모든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을거 같다. 준서야 우리 전역하고 아니면 휴가 나가서 꼭 만나자. 지금은 헤어지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꼭 건강하게 지내고 겨울인데 감기조심하고 몸관리 잘해라.
또 사회나와서 모른척 하지 말고 하하. 농담이고 너랑 OO, OO 이렇게 모여서 술이나 한잔하자. 군대 들어와서 많이 우울했는데 너 같은 좋은 동기를 만나서 너무 좋았다. 지금은 너무 서운하고 아쉽고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군대란 곳에 기왕 왔으니까 꼭 전역해서 밝은 모습으로 만나자. 항상 건강해라.
충성 OO
우리 다시 꼭~ 만나자. 건강해라.
To. 준서
쌀쌀한 날씨에 감기걸리지 않게 조심해라! 너가 가는 OO 부대 이름 멋있다. 빡쎄더라도 너의 특유의 웃음으로 날려버려~ 나중에 꼭 보자. 내가 소주 한잔 쏘마. 잘 생활해라.
충성 이병 OO
To. 준서
어라! 나는 쬐끔 썼는데 OO은 편지가 나보다 긴데? 이러면 자존심 강한 OO이가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않겠니. 하하.
여기 와서 너하고 OO, OO 있어서 상무대 적응하기가 훨씬 쉬웠어! 고마워~ 친구야~ 나중에 나가서 너하고 낚시한번 해보고 싶다. 가르쳐줘~ 친구 준서군! 많이 보고싶을거야~ 안녕 나의 친구~
무엇보다 뜻깊었던 건,
8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마치며 전차 조종 자격증을 수령했다는 점이다.
손바닥만 한 자격증 한 장 속에는
내 계급, 군번, 성명, 그리고 '전차 조종수'라는 주특기가 또렷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훈련소에서의 시작을 지나, 이제는 공식적으로 내 군생활의 이름표 하나가 더 생긴 셈이다.
기록은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노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 자격증 한 장이 전해주는 무게를,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건 단지 전차를 조종할 수 있다는 증명이 아니라,
두려움 앞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간
나 자신에 대한 조용한 증명이었으니까.
그저 ‘동기’로 시작했던 인연들이 이제는 이름을 기억하고, 일상을 걱정해주며 전우이자 친구가 되어 있었다.
짧다면 짧은 8주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함께 단단해졌다.
이제 각자의 자대로 흩어지고, 다른 시간을 살게 되겠지만
그 따뜻한 문장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오래 남을 것이다.
상무대, 그곳에서의 8주는 내 군생활의 초석이자
가장 사람다운 온기를 배운 시간이 되었다.
✒️ 기억의 조각
낡은 메모지 한 장이
8주간의 훈련보다 더 오래 남았다.
함께 버틴 시간은 기록이 아닌 감정이 되었고,
그 감정은 이름 모를 위로가 되어
내 다음 걸음을 지탱해주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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