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134
부모님께.
12월이 되어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100일 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복귀 후 일과에 적응하고 있어요.
지금은 ‘정신교육’ 주간이라 내무실에 중대원들이 다 함께 모여 발표도 하고, 비디오 시청과 체육 활동 같은 프로그램들을 병행하며 일종의 재정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휴가 복귀 후 대기 기간이 금방 풀려 이제는 초병 임무도 맡고 있습니다. 보초를 서는 시간도 생겼고, 화장실이나 전화도 더 이상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작지만 이런 변화들이 제게 조금씩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제가 중대 막내였는데, 이제는 신병 두 명이 들어와 제 아래에 후임이 생겼습니다. 직속 후임은 아니지만 아직은 서툰 말투로 이것저것 알려주며 제가 아는 만큼만 전하려 하는데, 그 모습이 왠지 낯설면서도 스스로가 조금은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말씀드렸던 제 전차, 112호는 고장으로 후송 나갔다가 며칠 전 다시 돌아왔습니다. 새롭게 정비되어 돌아온 전차는 정말 ‘새 차’ 같았고, 선임병들이나 간부님들도 “신병이 새 차 받는 건 드문 일”이라며 부러워할 정도였어요. 물론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론 부담감도 컸습니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에 있고, 조작이나 기능에 대해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 전차를 책임진다는 건, 마치 무거운 갑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기도 했거든요. 그래도 매일 매일 공부하고 연습하며 차근차근 익혀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전차를 내 손처럼 다룰 수 있게 되겠죠.
오늘은 정신교육 일정 중 견학 시간이 있어, 오전 내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청소도 평소보다 빨리 마치고 식사도 서둘러 먹은 뒤, 도라산역으로 향했습니다. 특별히 볼만한 건 없었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기했고, 무엇보다도 군복을 입은 채 바깥 풍경을 마주한다는 것이 묘하게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주로 정신교육은 마무리되고, 다음 주에는 어떤 일정이 잡힐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작업 위주로, 그리고 다시 전차 정비에 매진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편지가 짧아졌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급히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아버지, 어머니.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졌을 텐데 부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2003년 12월 18일
이병 이준서 드림
✒️ 기억의 조각
막내였던 내가 누군가의 선임이 되고,
모르기만 했던 전차가 내 전차가 되는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군인이 되어가고 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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