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154
군대라는 공간은 혼자 견뎌내는 시간 같지만,
그 속을 버티게 해주는 건 결국 '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낀다.
오늘 받은 아버지의 편지는, 짧은 겨울 해 속에서도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작은 등불처럼 느껴졌다.
아들 준서에게
준서야, 군대생활 잘하고 있지?
벌써 100일 휴가를 나온 지 한 달이 되어가는구나.
어제는 네가 보내준 연하카드에서 군 생활 열심히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준서도 2004년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 군 생활 잘하길 바란다.
아빠는 편지를 받아보며, 아빠 나름대로 옛날 이등병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자대배치를 받은 게 1월이었으니 계절도 비슷하구나.
강원도 인제에서의 날씨는 정말 무섭게 추웠고, 눈도 아주 많이 왔었지.
매일이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또한 이등병으로서 고참들 눈치 보랴, 주변 청소하랴, 분위기 살피랴… 정신 없었단다.
요즘은 그래도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많이 춥지 않다니 다행이다.
우리 가족은 요즘 각자 맡은 일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단다.
엄마는 봉사활동으로 바쁘시고, 아빠 역시 회사 일에 매진하고 있어.
특히 요즘은 통신사 번호이동성 모집 때문에 회사 전체가 정신 없단다.
형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있고 말이지.
준서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가족을 생각하면서 잘 지내라.
아빠는 요즘 기분이 무척 좋다. 왜 그런지 아니?
형이 어려운 군 생활을 마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빠 생각보다 더 성실하게 자기 관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가 너무 좋단다.
그리고 준서 역시, 누구보다도 군 생활을 잘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준서야, 파이팅!
새롭게 단장된 112호 전차 이야기며, 후임병 이야기도 모두 궁금하다.
이제 해도 넘어가고, 네 제대도 어느새 내년이구나.
그리고 다음 달이면 드디어 일등병 계급장이 달린다.
이 모든 게 다 세월의 흐름이야. 하루하루 열심히 지내고 있으면
기다리던 모든 일이 결국 너에게 찾아올 거야.
준서야, 네가 생각한 대로, 네가 다짐한 대로
열심히 군 생활 잘 해나가길 바란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단체 생활에서는 마음에 안 맞는 일도 생기겠지.
그런 상황들을 잘 조화시키며 지내는 것,
그게 바로 군 생활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이건 아빠의 경험담이야.
일등병 달면 주말에 전화도 한 번씩 할 수 있을 테니
그때마다 목소리 자주 들려줘.
봄이 되면 가족 모두 함께 면회 가도록 할게.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라.
2004년 1월 7일
사무실에서, 아버지가.
✒️ 기억의 조각 마음이 먼저 다녀온 시간. 아버지의 말 속에는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있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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