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158
부모님께.
벌써 새해가 밝고, 제 군생활도 어느덧 6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시간이 꽤 흐른 것 같고요.
요즘은 다시 ‘훈련소 모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화생방, 제식훈련, 각개전투, 총검술까지…
훈련소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작년엔 눈이 많이 와서 겨울 내내 눈만 쓸었다는데,
올해는 눈도 안 오고, 병영생활 전반의 지침도 많이 바뀌고 있어서
훈련 위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요.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다시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훈련소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낫습니다.
TV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PX도 가끔은 다녀올 수 있으니까요.
아직은 이등병이라 마음대로 다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자대생활보다는 훨씬 지낼 만합니다.
1월에는 전투준비태세 훈련, 장비 정비, 그리고 제식 같은 훈련들이 계속 잡혀 있습니다.
가끔은 야간 교육도 있고, 철야 교육도 있습니다.
훈련들이 고되긴 하지만, 막상 닥치면 그냥 하게 되더라고요.
요령껏 움직이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도 잘 가고, 재미도 나름 있습니다.
2월에는 드디어 ‘혹한기 훈련’이 있습니다.
훈련소에서도 행군을 해봐서 걱정은 없지만,
이번에는 112호 전차를 제가 직접 조종하고 나가야 해서 조금 긴장됩니다.
도로에서 조종해 본 적이 없어서 민간 차량들과 함께 움직이는 상황이 걱정되긴 해요.
하지만 군대라는 게 늘 그렇듯, 막상 닥치면 어떻게든 해내게 되더라고요.
워낙 제가 조종을 잘 하기도 하고요. 하하.
이제는 자대생활에도 적응했고, 선임병, 후임병들과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주특기 지식은 부족하지만 하나씩 배워가고 있으니까요.
내일부터는 신병 집체교육이 있습니다.
정신교육도 받고, 견학도 하고, 체육활동도 하는 일정이에요.
무엇보다 좋은 건 초병 없이 3박 4일을 푹 잘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선 그런 걸 ‘긴밤’이라고 부르는데, 정말 꿀 같은 시간이에요.
요즘 거의 매일 새벽 초병을 나가다 보니, 밤에 제대로 자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번엔 진짜 푹 쉬면서 혹한기 훈련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다음 달이면 일병이 되고, 8월이면 상병이 됩니다.
그때까지 정기휴가를 쓰지 않고 버텨보려고 해요.
운이 좋으면 포상휴가도 하나쯤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는 해보지만…
포상 받을만한 큰 껀덕지가 없네요.
중대장님도 새로 오시고, 부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합니다.
규율, 휴가, 생활지침들이 바뀌는 중이라 적응하느라 바쁩니다.
요즘 날씨가 점점 더 쌀쌀해지다 보니, 집 생각도 더 많이 납니다.
그래도 저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하루하루 충실히 지내고 있으니
연락이 뜸하더라도 너무 걱정 마세요.
저녁 개인정비 시간에 초병을 나가게 되면 편지를 쓰거나 전화할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그래도 가능한 한 자주 소식 전할게요.
설에는 떡국 많이 드시고, 가족들과 즐겁게 보내세요.
몸은 부대에 있지만, 마음만은 늘 집에 가 있습니다.
가족들과 친척분들께도 새해 인사 전해주세요.
건강 꼭 챙기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2004년 1월 11일
아들, 이병 이준서 드림
✒️ 기억의 조각
몸은 군복을 입었지만,
생각만큼은 아직도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훈련의 땀보다, 그리움이 더 깊이 배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공감하셨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다음 편을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