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느리게 흐르는 하루

내 이름으로 충성한 D+167

by 퇴근 후 작가

오늘은 부대의 정밀 진단이 있는 날이다.


아침부터 쌀쌀한 바람이 불었고, 실내에 있으면 좋을 줄 알았지만 막상 내무실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오히려 더 지치는 느낌이다. 따뜻한 온도에 몸은 늘어지고, 무기력한 기분이 자꾸만 나를 끌어내린다. 밖은 차갑고, 나가서 활동하기엔 귀찮지만, 그조차도 잠시 머리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되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는 생각보다 더 길게 느껴지고, 그런 시간 속에서 정신은 점점 더 피곤해지는 듯하다.


군 생활을 하면서 종종 이런 기분을 느낀다.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더 힘들게 느껴지는 날들. 활동이 적어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지고, 머릿속 생각들도 가라앉는다. 반복되는 하루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주 마주치는 건 ‘지루함’이라는 이름의 피로감이다. 그럼에도 이런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조금씩 적응하고, 또 나름의 성찰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일이면 설 연휴가 시작된다.

가족과 떨어져 맞는 첫 명절이라 그런지, 마음 한켠이 허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설 연휴를 단순한 쉼 이상의 시간으로 삼고 싶다. 잠시나마 훈련에서 벗어나 숨을 고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군대라는 환경은 분명 제약이 많고, 몸과 마음 모두를 시험하는 곳이지만, 그 안에서도 배움은 계속된다. 오늘 같은 하루도 결국은 성장의 일부일지 모른다.


설이 지나면 다시 일상이 이어지고, 훈련과 조종, 정비로 꽉 찬 나날이 돌아올 것이다.

그래도 지금의 이 고요한 하루가 다음을 준비하는 여유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휴식이 필요한 순간은 어쩌면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느끼는 타이밍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 하루도 결국 나를 채우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이제 다시 다짐해본다.

설 연휴를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닌, 재정비의 시간으로 삼겠다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또 새로운 각오로 복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가 때로는 버겁고,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쌓여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루하고 느리게 흐르는 하루였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조금씩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 기억의 조각 지루함 속에서 흐르는 시간도, 언젠가는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움직이지 않아도 자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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