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176
설이 지나고, 차가운 겨울 공기가 다시 몸을 감싸기 시작한 무렵. 한동안 조용하던 날들 속에서 어머니의 편지가 도착했다. 짧지 않은 손편지엔 소소한 일상의 소식부터 내 걱정까지, 엄마 특유의 다정한 말투가 담겨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 준서에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설날엔 집 생각이 많이 났겠지. 엄마도 그랬단다. 그런데도 막상 달려가진 못하고, 그저 마음만 달려갔지.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편지 한 장 써 보내지 못하고 너한테서 오는 전화랑 편지에 기대기만 했구나. 엄마 마음속에선 늘 네가 맴돌고 있었는데 말이야. 오늘도 집 청소를 하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이 편지를 급히 써내려가고 있어. 그래도 네가 잘 적응하고 건강히 지내고 있다니, 그보다 더 고마운 소식은 없단다.
이곳은 아빠가 요즘 통신사 번호이동성 전화 모집 때문에 많이 바쁘셔. 아빠는 영업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전 직원에게 모집에 대한 임무가 주어졌다고 하네. 다행히도 12건이나 하셨다고 하더라. 엄마는 아직 한 건도 도움 드리지 못해서 아빠께 미안하기도 하고, 괜히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래.
형도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며 잘 지내고 있고, 친척 큰형은 5월 22일에 결혼식이래.
그 전에 너를 보겠지만, 그날엔 휴가 나와서 꼭 같이 갔으면 좋겠구나.
엄마는 요즘 자꾸 면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월에 혹한기 훈련 들어간다며? 걱정도 되지만, 누구보다 잘해낼 거라 믿는다. 네가 보내준 영양갱은 온 식구와 친척들이 반쪽씩 나눠 먹었단다. 정말 고마워.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라서 더 기뻤어.
큰고모는 강원도 홍천에 집을 새로 지어서 이사를 갔고, 설날에는 떡국도 먹고 세배도 했지. 날씨도 봄처럼 포근해서 지내긴 좋았단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께서 심장하고 폐가 안 좋으셔서 그런지 설날에 얼굴이 많이 부으셨더라. 세배도 안 받으시고... 건강이 걱정돼.
준서야,
네가 바쁘고 고참들 눈치도 봐야 하겠지만, 짬 내서 집에 자주 전화해줘. 너한테서 전화만 와도 가족들 얼굴엔 웃음꽃이 피거든. 엄마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너의 목소리가 우리한테는 참 큰 위로가 된단다.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시각은 오전 10시가 좀 넘었어. 곧 동사무소에서 열리는 설맞이 척사대회 회의에 나가야 해서 이만 줄일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여기서 안녕 할게.
이 편지를 받을 즈음이면 너는 일병 계급장을 달았겠지? 진급 미리 축하한다, 우리 아들.
엄마가, 사랑하는 준서에게.
P.S. 전화카드 1만 원짜리 하나, 5천 원짜리 두 개, 3천 원짜리 하나 넣어줄게.
✍️ 기억의 조각 가까이 있지 않아도, 마음은 늘 곁에 있다. 엄마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숨결, 그것 만으로도 다시 하루를 견딜 힘이 났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공감하셨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다음 편을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