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192
입대 후 자대에 와서 혹한기 전술 훈련까지, 벌써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돌아보면 그 모든 날들이 한꺼번에 지나간 것처럼 정신없고 빠르게 지나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나는 완전히 백지 상태였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일과표 속에서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가득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곳의 규칙과 리듬을 배워나갔다.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도 배워야 할 것,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큰 훈련을 끝낸 뒤 찾아온 이 느슨한 하루 속에서, 몸이 피곤해지자 마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치는 듯한 감각. 훈련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그런 공허함이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틈 사이사이에 나를 웃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PX에서 초콜릿과 과자 하나를 사 먹는 일, 집에 짧게나마 전화를 거는 시간, 혹은 일과 후에 쓰는 편지 한 장. 아주 사소한 일들인데도, 그 안에서 나는 위로를 받는다. 군대라는 공간에선 그런 작은 것들이 전부가 되곤 한다. 초콜릿 하나에도 마음이 녹고, 전화 한 통에 다시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긴다.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건, 이 모든 작은 경험들이 나를 조금씩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등병 시절 가장 싫었던 것중 하나는 초병 근무였다. 밤새 어두운 초소에 서 있는 일은 몸도 마음도 고된 일이었고, 피곤함이 온몸을 짓눌렀다. 하지만 요즘은 그 초병 근무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이유는 명확하다. 초소에 서 있으면 나에게 '생각할 시간'이 생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 유일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다른 일에 시달리지 않고, 그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그 고요한 시간은 점점 나에게 소중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초소 근무에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상의 소음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 내무실의 소란에서 벗어나 한 시간 반 동안 나만의 세계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위안이 된다. 물론 추운 날씨 속에서의 초소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 안에서도 익숙함이 생기고, 선임들과 나누는 몇 마디 대화 속에서 나도 이곳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군대라는 낯설고도 규칙적인 시스템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군생활은 여전히 쉽지 않다. 가끔은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어떤 날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기력하다. 하지만 그런 순간조차 이제는 내 일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는 나름대로 이 낯선 리듬에 적응하고 있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모든 것이 두렵고 막막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확실한 내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이렇게 수양록을 쓰며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봤다. 글을 쓰는 이 순간, 그동안의 힘든 순간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미소가 난다. 그때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버티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이 군대라는 공간 안에서, 나는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더 이상 군대는 단순히 견뎌야 하는 곳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만나고 단련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느끼는 건, 이곳의 하루하루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회에 있있을 때 알지 못했던 편지 한 장, 초콜릿 하나, 전화 한 통이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줄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그 사소한 것들 덕분에 하루를 더 버티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생활의 묘미다. 군대라는 이 좁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나는 의미를 찾고 있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나는 이 시간을 믿는다. 언젠가 지금의 내가, 그리울 날도 올 것이다.
군생활. 아직까지는, 할 만하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 기억의 조각
생각이 많던 날, 아무도 없는 초소에서
나를 다독이는 건 결국 나였다.
사소한 위로가 쌓여,
나는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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