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

내 이름으로 충성한 D+196

by 퇴근 후 작가

오늘은 수요일. 오랜만에 내무실 분위기가 부드러웠다. 소대 간담회를 하며 편지를 쓰고, PX에서 사 온 과자를 나눠 먹으며, 조금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훈련 강도가 높아지면서 날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가 쌓이는데, 이렇게 가끔 주어지는 여유는 큰 위로가 된다. 이런 시간들이 더 자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제는 사단에 다녀왔다. 처음엔 단순히 외출 개념인 줄 알고 말끔하게 전투복을 입고, 전투화도 깨끗하게 손질해 출발했지만, 도착해서야 그 자리가 ‘서예 대회 참가자 선발’ 자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간부 병사 모두 참여하는 그런 군인들을 위한 대회 같았다. 사단에서 시키는 대로 얼떨떨한 기분으로 붓을 쥐었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작은 흥분이 올라왔다. 그냥 참가의 목적이 있는 수준일 줄 알았는데, 포상이 걸려 있는 대회라는 사실에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군에 오기 전, 학창시절에 서예를 배운 경험이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썼던 기억이 있다. 회상해 보면 당시 까불고 정신이 산만했는데 좀 얌전해질까 싶어 부모님께서 학원에 보냈던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도 학창시절 성인 대회에 출품도 하며 수상 경험이 있었다. 아무튼, 붓글씨을 쓸 때면 무언가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이었고, 나름대로 손에 감각도 붙었었다. 그래서 막상 종이를 앞에 두었을 때 손끝에서 옛 감각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렇게 오랜만에 붓을 쥐고, 군복 입은 채 글씨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작년 수상작을 보니 생각보다 수준이 높았지만, 그만큼 나에게도 도전하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간부님들도 내 글씨체를 보고 ‘괜찮다’는 말을 해주셨고, 기회가 된다면 출품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반응이었다. 요즘처럼 반복되는 훈련에 피로가 쌓여 무기력해지는 시기에, 나에게도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괜히 반가웠다.


물론 훈련은 계속된다. 반복되는 작업과 체력 훈련 속에서 가끔은 멍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가며 지내는 생활은 여전히 낯설고 힘들지만, 간혹 이런 작고 특별한 기회들이 마음을 환기시켜 준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다시 떠올렸고, 그걸 바탕으로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품 마감은 5월 10일. 아직 시간은 여유가 있다. 훈련 중 짬이 날 때마다 구상하고, 몇 번이고 글씨를 써보며 준비해볼 생각이다. 성적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 자체라는 걸 안다. 내 마음을 담은 결과물이 하나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할 수 있다는 것도 내겐 작은 성취다. 어쩌면 이 서예 대회도, 이렇게 수양록을 써내려가는 이 순간도, 모두 지금 내 군생활의 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지 모르겠다.


✍️ 기억의 조각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
군복이 아닌 붓끝에서 시작됐다.
서예 대회 준비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작은 성취가 되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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