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207
조금씩 피로가 풀려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는데, 오늘은 간만에 어깨가 가볍게 느껴졌다. 훈련과 작업이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하루였다.
오늘은 간부연구실에서 붓글씨 연습을 했다. 오랜만에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이 귀한 여유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먹을 갈아 놓고는, 내가 좋아하는 다이제스티브와 약과, 틴틴을 조심스레 옆에 두고 천천히 음미하며 한 자 한 자 붓을 움직였다. 군대에 오기 전에는 평범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하나하나가 특별해진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온 신경을 집중해서 ‘맛본다’는 감각이 생겼다. 어쩌면 군대에서 내가 배운 첫 번째 사치이자, 가장 소중한 쉼이 이런 종류의 여유인지도 모른다.
붓글씨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힘차게 써 내려가고 싶었지만, 막상 붓을 들고 나면 선이 흐트러지고 획이 흔들렸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글씨에 자꾸만 짜증이 밀려왔고, 그 안에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이 불편함조차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조금씩 손에 감각을 익혀갔다.
군 생활이 그렇다. 생각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반복하고 연습하고 다시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손에 익고 마음에 익는다. 오늘은 그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글씨 하나하나가 제대로 써지지 않아도, 그 안에서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은 분명 나를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내일은 공휴일이라 다시 붓글씨를 쓸 기회가 생긴다.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진 글씨를 쓸 수 있도록, 지금처럼 묵묵히 연습할 생각이다.
군 생활은 쉼 없이 굴러가는 기계처럼 반복된다. 그 안에서 자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같은 여백이 꼭 필요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해본다. 지친 몸이 조금은 가벼워졌고, 마음에도 작은 여유가 들어찼다. 훈련은 여전히 빡세고, 시간은 늘 모자라지만, 이런 날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될지 모르지만, 오늘의 붓끝에서 피어난 평온을 기억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작은 성취 하나에도 스스로를 칭찬하며, 또 하루를 잘 보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 기억의 조각
빠르게 흘러가는 날들 사이,
잠시 멈춰 선 오늘이 내 마음을 다독였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공감하셨다면, 구독과 라이킷, 응원하기로 다음 편을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