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약혼남의 숨겨진 <러브레터>

ラブレター(1995)

by 디디




그가 쓴 이름들이 당신 이름인 것만 같군요

와타나베 히로코, 러브레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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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jpg 자판으로 답장을 쓰고 있는 '후지이 이즈키'.


9.jpg '이즈키'의 집 앞에서 편지를 쓰는 '히로코'.



01. 1인 2역의 이유


감기를 달고 살았던 '후지이 이즈키'의 행동으로 '와타나베 히로코'와는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일종의 표시를 해뒀지만, 사실 영화 전반부까지 같은 배우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되감기를 몇 번이나 하고선 '아차' 싶었다. 그 정도로 정말 닮기만 했지 아예 다른 사람인 듯 1인 2역 연기를 한 '나카야마 미호'의 연기력이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그리고 <러브레터>에서는, 그들이 닮았다는 장치는 충격적일 정도로 '중요한 단서'가 된다. '후지이 이즈키'라는 남자를 두고 연결된 두 여인의 편지로 누군가는 진짜 이별을 하게 되고, 누군가는 새로운 마음이 깃들게 된다.


처음에는 '히로코'가 너무 깊은 곳까지 알게 돼 슬프지 않을까 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뒤늦게 알아차린 주인 없는 사랑이 더 여운이 길 것 같아 결국 더 마음이 아픈 상대는 '후지이 이즈키'가 아닐까.




8.jpg 러브레터 명장면.



"오겡끼데스까"라는 명대사 장면. 과연 어떤 뜻이었을까 궁금했는데 예상외로 더 가슴 아픈 외침이었다. 이 장면은 이즈키와 히로코를 번갈아 보여주며 같은 대사를 읊게 하는 극적인 연출로, 누군가의 오겡끼데스까는 '잘 지내시나요?'라는 시작의 의미를, 누군가의 오겡끼데스까는 "잘 지내세요"라는 마지막 이별을 담았다. 이 장면에서 히로코는 끝내 못 놓던 이별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동시에 인사를 건넨 대상은 단 한 명. 누군가는 이별을, 누군가는 만남을 시작하게 만드는 상반된 감정이 교차된 아이러니한 상황에 정작 그 대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삼박자가 소름 돋게 어우러져 잡음 없이 '관계'라는 단상에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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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약혼남의 비밀


잘못 보낸 편지로 원래 주인을 찾은 것처럼 와타나베 히로코가 그를 잊지 못해 보냈던 주소에서 도착한 미지의 답장과 그 운명의 장난이 결국 필연이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히로코의 혹시나 모를 기대감과 그를 잊지 못 한 그리움과 미련으로 보낸 마음이 '후지이 이츠키'를 통해 해소가 되기도 한다.


왜 약혼남인 '후지이 이츠키'가 죽음을 앞두고 평소에는 싫어하던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렀는지, 여자에게 늘 쭈뼛거리던 그가 자신을 보고 첫눈에 반했던 건지, 왜 끝내 약혼을 먼저 말하지 않았는지.


단순히 첫사랑과 닮아서 '히로코'를 좋아했다고 치부하기에는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진 않겠지만, 결국 그 슬픈 사랑 속에 불순물을 발견하게 된 것이 가히 충격적인 결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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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코'의 입장에선 뒤늦게 약혼남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충격으로 이미 그는 죽었지만 어쩌면 지옥까지 찾아가 따지고 싶을 정도로(?) 한순간 쓰레기로 전락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서로 이름이 같았던 동급생 '후지이 이츠키'들의 풋풋했던 과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삶에서 다시 들여보지 않을 먼지 쌓인 그 이름을 털어보니 리본 묶인 상자 속에 소중하게 보관돼 녹슬지 않았던 존재. 그와의 추억을 라디오처럼 끊기지 않고 회상하며 적어 내리던 순간이 꼭 어릴 적 묻어뒀던 타임캡슐을 여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도 몇 가지만의 단서로도 알아차릴 정도지만, 정작 본인만 모르고 있던 '첫사랑'이 결국 남풍을 타고

러브레터로 도착하게 된다. 결국 후지이 이즈키의 마음이 제 주인을 늦게나마 찾았지만, 히로코가 그들을 잇기 위한 중간 역할로만 쓰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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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보낸 편지로 늦게나마 알게 된 첫사랑. 단순히 한 문장으로 <러브레터>를 설명하기에 그들이 마음이 너무 애달프다. 너무 진부한 얘기지만, 1995년에 영화가 탄생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이유에 고개를 무한정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사실 반복적으로 바뀌는 시점 중 그 누군가의 시선으로 맞춰 보면 영화의 느낌을 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




내 머리를 통째로 소포로 보내는 게 가장 빠르겠군.
- 후지이 이즈키



글 | 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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