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7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요. 선자 씨의 웃음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죠. 온몸을 들썩거리며 웃다 보면 몸에서 기운이 쑥 빠져나가며 배가 싸아 아파져 와요. 그때 야윈 ‘선자 씨의 어깨’가 보여요. 한겨울을 버텨온 쇄골도 보이고요. 가족들에게 죽음의 전령이 여러 번 다녀갔어요. 죽음과 친해졌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요. 죽음은 종종 선자 씨와 눈이 마주치며 그녀를 희롱하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선자 씨는 환하게 웃어버려요. 웃음의 끝자락에서 늘 이렇게 물어보죠.
“나 살아있는 거지?”
가냘픈 뺨과 웃을 때 더욱 예뻐지는 보조개를 가진 ‘그녀’를 봐요. 그래요. 그렇게 고즈넉이 바라보다 보면 봄이 오곤 했어요. 겨울 눈밭을 뚫고 조용히 웃으며 봄이 오는 게 보이면 자기도 모르게 숙연해져요. 이 고비에서 숙연해지는 건 여전히 그녀를 희롱하는 죽음의 그림자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웃을 때마다 조심스러워요. 웃음 끝에 남는 깊은 앙금, 그건 슬픔만은 아니어요. 기쁨을 동반한 슬픔이에요. 줄 것을 다 주고 손을 놓는 가을의 낙엽처럼 그렇게 홀가분한 슬픔이지요. 그때는 마음껏 웃을 수 있을 거예요. 초봄 진눈깨비를 동반한 봄비처럼 뒤돌아 보지 않고 웃을 거예요. 그녀는 마음껏 웃을 때를 오래 기억하진 못해요. 뇌를 수술받았거든요. 죽음이 뭐 대순가요. 선자 씨는 이렇게 살아있는데…. 삶이 죽음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어요. 누가 이기는지는 빈손으로 웃어보면 알게 돼요.
해마다 2월이면 선자 씨는 자기도 모르게 물어봐요.
‘삶은 무엇인지, 저 차가운 비를 뚫고 오는 게 봄이 맞는지’
봄이 오면 아지랑이 같은 선자 씨의 삶이 춤을 추어요. 들판 저 너머에서 천천히 걸어오며 봄기운에 맞추어 춤을 추는 거지요. 선자 씨는 늘 자신이 어느 선에서 웃고 싶은 사람인지 ‘또 하나의 선자 씨’에게 물어보지만
답은 언제나 빙그레 웃음으로 돌아와요.
봄 들판을 가로질러 신나게 웃어젖히는 것 외의 생에 뭐 별다른 게 있기나 하던가요? 나는, 박선자! 보조개가 예쁘고요. 생의 답을 목젖이 보이도록 웃으며 찾아가는 봄의 전령이에요.
바람이 부는 제주 남쪽에서 선자 씨의 웃음소리가 들려요.
봄이 온다는 전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