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22
여긴 궁창, 세상의 모든 물이 지나는 틈새. 시과의 날개는 또 얼마나 어지럽게 흩날렸는지. 그 적단풍, 붉은 낙화의 그 어느 가을날 첫눈이 올 때까지 엄마손을 잡고 잎새뒤에 숨어있다가 눈이 쌓이고 잎새와 함께 쏟아졌다. 파종기 지나 봄, 여름. 그래 여름, 하늘이 열릴 만큼 장마가지던 날 낙엽과 함께 쓸려가다 수로로 도랑으로 뱀과 날파리와 죽은 나방과 열매와 오물과 흙탕물과 엉키고 설켜 흐르다 턱 걸린 곳이 이곳이다.
궁창틈새.
눈 떠보니 멀리서 작약 모란 벽오동 아카시아의 향기. 몇 날 며칠 온몸이 굼실굼실 가렵고 연옥의 오수가 숨 막히게 몰려오더니... 뿌리, 뿌리 뿌리가 돋았다.
추위만큼 햇살이 스미고 어미젖 같은 습기가 사시사철 스미는 이곳은 천국의 땅. 7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적단풍을 피웠다.
백척간두 한걸음 디디면 천길 나락이 아니다. 두걸을 백 걸음 천 걸음을 디뎌도 나는, 어디든 뿌리낼 수 있다. 다시 또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이 몸이 사람의 눈에 띄어도 된다. 내 몸을 떠난 시과들은 어미의 세월을 타고났을 터. 문득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툭 떨어지는 알밤이 떼구루루 이곳으로 굴러 떨어진다.
붉고 실한 밤이 궁창에 몸부림친다.
<2025.0514. 진상미로 1385번 길 114 농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