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8월, 정오의 공방

60초 소설 34

by 소요 김영돈

여름내, 문이 닫혀있었다. '휴가'라는 글자아래 '기약 없이 쉬어갑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팥빙수가 맛난 집이었는데.


나는, 쥐어 터져봐야 해!

그는 중얼거리며 링에 오른다. 야생의 사각지대, 둘 중에 하나는 쓰러져야 한다. 그런 승부를 왜 경험하고 싶었을까. 살아보니 삶은 승부였나, 짜릿함을 맛보고 싶었나.


공이 울리자 경기가 시작되었다. 링에 올라서니 평소 즐겨보던 프로들의 경기는 환상이었다. 땀이흘러 상대의 눈이 보이지 않고 있는 힘껏 휘둘러 보아도 거리가 가늠되지 않는다. 가드를 올리기 힘들어지는 3분, 아~3분이 24년 인생보다 길다. 그는 본 대로 배운 대로 해본다, 가드를 올려 팔꿈치를 양귀에 댄다. 왼손으로 상대의 주먹을 고른다. 틈이 보일 때마다 오른손을 내지른다. '어깨힘 빼고'라는 말을 왜 그토록 강조했는지 새삼 실감 난다. 주먹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스텝 스텝. 가족들의 함성이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특히 엄마의 응원소리. 계속 뻗어가며 앞으로 가, 계속 앞으로 뻗어 조금만 더 힘을 내, 이제 다 끝나가. 조금만 더. 올여름은 (잘)놀고 도전하고 먹고 싸우고 울분을 터트리고 화해하고 떠나게 되었다. '쥐어 터져봐야 해'라고 중얼 거리던 그는 링위에 올라서 보았다. 흥분과 두려움, 분노를 몰고 다니는 감정의 물고기, 그 물고기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8월의 정점에 복싱과 빙수가 있었다.

8월, 옆으로 누우면 무한대가 되어 끝없는 지평선이 되어버리는 8월이다. 과즙, 살점, 씨눈, 호두속살까지 흐물흐물 양분을 모으는 달.

여름초입부터 꽉 찬 열기를 뿜어내던 햇볕이, 8월 여름의 종착역에 오면, 수많은 진딧물과 해충들을 몰고 온다. 생육이 번성한다. 눈이 번들거린다. 마지막 즙을 모으려는 몸부림.


8월은, 마지막 생존 전쟁터다.

꼭꼭 눌러 채워야 가을에 문단속을 할 수 있다. 채워야 비울 수도 나눌 수도 있다. 비로소 멈출 수 있는 여유도 8월에 눕지 않고 움직이고 내딛고 참아내며 채웠기 때문이다.


살집이 만들어진다. 설익은 살집은 해충과 벌레들의 몫이다.

분노, 화, 죽음의 한계, 부대낌, 감정의 폭발을 다스리는 몸짓이 모여 8월의 살집이 된다.

'나는 좀 줘터져야 해'

그는 이렇게 말하며 잇몸 스크레지에서 나오는 핏물을 탁 뱉어내고 라카로 걸어간다.

8월, 정오의 공방에서는 팥빙수를 팔기 시작했다. 해진 살집을 가라앉혀줄 팥빙수. 을사년의 8월, 정오의 공방 앞에 무궁화와 황금해바라기가 활짝 피어있다.


[8월, 권투에 도전한 중천 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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