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경구 씨 우승

60초 소설 50.

by 소요 김영돈

"너는 왜 거기 앉아있어? 너는 안 해?" 하고 태수 씨가 말하자


경구 씨는,

"나는 이미 우승 확정이야"하고 말하며 의자 등받이를 뒤로 기울인다. 경구 씨 인생에서 가장 거만하고 부듯한 깔봄이었다. 너무 일찍 끝난 토너먼트라서 다들 아쉬워하며 랠리를 하고 있었다.

'기회를 줄 테니 하수들 풀리그 해봐, 순위 결정전 내가 지켜볼 테니'하고 말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경구 씨는,

1년 전 망막 수술을 했을 때 나는 안 보이니까 탁구활동에서는 빼달라고 차라리, 심판을 보겠다고 했었다. 그날 공과 상관없이 허공을 가르는 라켓을 보면서 경구 씨는 문득 지나간 세월이 생각났다. 어쩌면 앞으로 남은 세월도 이렇게 허공을 가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태수 씨의 스메쉬처럼 다가왔다. '몸도 마음도 더 나빠지지 않기'를 되뇌었다. 시간이 갈수록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하락세인걸'하는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그때, 패자들 모여요. 우리끼리 풀리그해서 순위 결정합시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은 사람들의 풀리그'는 경구 씨와 경기할 때와는 자뭇 달랐다.

'평소 실력들이 잘 안 나오네, 공격하다가 실수로 먹는 게 더 많아, 멋있게 하나 먹고 세 개 실수하면 어떡해' 거만한 경구 씨의 코치가 계속된다. 경구 씨는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되뇐다.

'이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이긴 거야? 져준 거야 아니면 나한테 오금이 저린 거야' 하지만 경구 씨는 금세 생각을 바꾼다. '져준 것도 진거야. 얻어먹은 것도 먹은 거고 누가 세워준 것도 선거야. 훔쳐서 배운 비법도 내가 하면 내 비법이 되는 거고, 아무리 허름한 가게도 내가 하면 내가 주인인 거야'


'경구네 식당'(2023.3.2 60초 소설 43, 햇살은 그대 얼굴을 따스하게 비추고 p151) 이후 2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진짜 자립을 준비해야 한다. 경구 씨는 늘 의기소침해서 엇나가게 보던 것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승 때문에 이 생각이 더 견고해졌다.


다들 우승자 경구 씨를 경외하고 축하해 준다. 최선을 다해서.


그날,

용진 씨는 경구 씨의 빛나는 한쪽 눈을 보고 진짜 오금이 저렸다.

<2025.11.20. 안나의 집 2층, 강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