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진가 저수지 ㅇㅇ어 씨의 명상

61. 60초 소설

by 소요 김영돈

나를 만나러 왔나. 곱은 손이 떡밥을 흔들며 나를 유혹한다. 내가 뭐라고. 지난해 봄부터 초여름까지 떨어진 꽃잎과 꽃가루를 입술이 노랗도록 먹었다. 그걸 먹고 한해를 버텨냈다. 그 어느 날 하루, 넋을 놓고 낙화를 바라보던 사람이 당신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마음 먹으면 입술이 찢어져도 내색을 안 하던 당신. 깊은 수면 아래서도 맑은 날은 햇살이 당신을 비추어 주었다. 그런 날 물가로 산책하러 나가보면 산책로를 분주히 걷던 걸음걸이가 당신이 아니었을까.

입춘 지나도 꽁꽁 언 저수지 때문에 요 며칠 잘 잤다. 얼음 위에 눈이 덮여 하얀 솜털 이불을 덮고 자는 기분이었다.

늦겨울, 저수지 위로 익숙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을 곤두세우는 걸음걸이. 당신의 보폭은 당신의 마음이 실려 있었다. 정과 끌, 톱을 챙겨 와서 이내는 돌멩이를 굴려 구멍을 내는 소리에 화들짝 잠이 깼다.

당신이 드리운 손짓에 다시 병이 도질까, 가슴 조인다. 내가 뭐라고. 저 떡밥을 삼키면 당신의 곱은 손목이랑 단단하게 뭉친 그리움들이 한꺼번에 나를 부둥켜 줄까. 나는 아주 오래오래 살 것이다. 가끔은 백로의 입에서 먹음직스럽게 끌려가는 내 영혼을 느낀다. 씹히고 삼켜져도 멀쩡하게 백로를 구경하고 있는 내 영혼. 당신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지만 나는 여기서 태연하게 늙어가고 있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여기보다 훨씬 추웠던 지구 저편 저 위쪽 마을. 가문비나무 무성한 호수를 누리는 왕족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귀소본능이 있고 후반기에는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 떠나는 족속이었다. 아무일 없을 것 같은 날, 빙산이 무너져 산사태가 나던 날, 어느 강태공이 낚아챈 낚시에 입이 찢어져 벙어리가 된 채 이 저수지에 떨어졌다. 저수지는 적단풍이 품고 있었다. 한쪽에는 밤나무 군락지.

저수지에 비친 사람들은 모두 핏빛 마음을 가졌다. 세상 어디선가 입술이 찢어져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주 저수지를 돌았다. 내가 살아있는 것은 적 단풍 때문이다. 봄부터 11월까지 내내 동네를 굽어보다가 늦가을부터 피를 토하는 나무. 그 얼굴이 이 저수지를 들여다보며 시뻘건 잎을 쏟아내던 날 당신의 속내를 보았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속으로 쌓이면 적 단풍이 된다.

나는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당신 목젖에 걸린 미늘을 누가 빼낼까 걱정이 앞서서 어떤 시인의 투정처럼 ‘온종일 바람만 낚았다’

<2026.02.10. 진가 저수지의 강태공 k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