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어른도 아닌 '우리'의 이야기
아이들의 삶은 때로 연기같다. 어른이 되면 별별 이유로 하지 않을 부끄런 말들을 서로 늘어놓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어른'의 시선일 뿐이겠지만. 관계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과 반대로, 어른들 삶은 대부분 연기다. 마음 속에 없는 말까지 주워섬기느라 입이 분주하다. 제 모습이 연기면 그만이지 아이들까지 다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무례함까지 갖췄다.
영화 속 어른들은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한심하다. 이상적 가정假定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다. '답답하고 한심한 어른'의 존재가 아이들의 시선에서 더 확실해진다는 게 영화의 색다른 점이다. 어른의 허리-가슴께 위치하는 카메라가 답답히 느껴진 이유는, 나도 어른의 눈으로 영화 속 아이들을 재단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동생이 맞고 있으면 누나가 때려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는, '당한 만큼 갚아 주는' 어른 세계의 논리를 아이에게 전한다. 그 말의 영향인지 선과 지아는 서로의 아픈 구석을 남들에게 말하며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말하기엔 가슴 한 구석이 퍽 시리다. 받은 만큼 돌려 주는 행위가 '당한 만큼 갚는다'로 변질돼 버린 세상에 유감을 표해야 하는 걸까.
이 영화에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꿈꾸는 '진짜 어른'의 모습은 일절 없다. 동생이 맞고 있으면 대신 때려 갚아 주라는 엄마, 아이들의 싸움에서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가려내기 급급한 선생님, 어린 애들이 일 있을 게 뭐 있냐는 아버지, 듣는 아이는 안중에 없이, 제 손녀의 아픈 과거를 말해 버리는 할머니까지. 닮고 싶은 사람 하나 없는 영화를 보며 드는 '현실 고증 100%'라는 느낌이 왜 이리 씁쓸한지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과 지아의 관계 회복을 바랐던 건 나뿐이 아니었을 터. '어른들' 인생이 원대로 되는 일이 없듯,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목이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건, 이 이야기야말로 서로를 한두 마디 말로 타락시키고 구원하는 우리네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봤어. 한지아 금 안 밟았어." 그 한 번의 따스함은 그들을 구원하기 충분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