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전범선
서울에 올라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해방촌이었다. 해방촌이 어딘지도 모른 채, 회사와 가깝고 집값이 싸기에 덜컥 반지하 집을 계약한 탓이다. 집 상태가 하도 엉망이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던 때가 많았는데, 그래도 동네는 좋았다. 집은 후져도, 내 월세와 보증금은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야경 값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었으니.
그래도 2년은 살았다고,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에 스윽 눈길이 갔다. 전범선은 과거에 '굿피플'에서 처음 봤고, 얼마 전 '포커스'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다시 봤다. 존재가(?) 흥미로워 여러 군데 찾아보니 그도 '해방촌 사람'이었다. 유튜브 채널 이름도 심지어 '해방촌장 전범선'. 아무도 뽑지 않은 촌장인데 너무 어울려. 어쨌거나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와 같은 동네에서 같은 공기를 마셨다니까 더 그랬다. 채식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생기고 있겠다, 덜컥 책을 주문했다.
책 내용 대부분은 전범선의 가족·학교·군대·동네 이야기와, 그로부터 뻗어 나온 생각들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전기'같이 들리겠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는 자기 족적에서 민족주의, 능력주의, 학력주의, 나이주의, 종차별주의 등 수많은 '이즘'을 끄집어내고 솎아내고 깨부순다. 마치 그의 노래처럼 '전범선으로부터의 혁명' 과정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건 내 느낌일 뿐이지만, 책에는 전형적 '해방촌 바이브'가 담겨 있다. 찬찬히 읽고 있노라면 'Keep HBC weird'가 나붙어 있던 해방촌 아랫동네 길거리가 떠오른다. 런드리프로젝트의 세제향, 보니스피자의 치즈 냄새, 녹사평역 가는 길목 가로수가 아른거린달까.
그 동네에 계속 살았다면 나도 그처럼, 술술 풀리면서 재미진 글을 쓸 수 있을까. 언제까지 글 쓰는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돈 왕창 벌어서 해방촌 좋은 집으로 돌아갈 날이 온다면 참말로 좋겠다. 서울의 야경을 뒤로한 채 재밌는 글을 왕창 써 내릴 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