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독립영화를 즐겨본다. 스펙터클이 가득한 영화를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각 잡고 봐야 할 것만 같은 그 기분,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 세상이 뒤집어지는 혼란을 매번 보고 있자면 '영화적'이라는 말이 정말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만 쓰이는 단어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독립영화는 일상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람들이,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매력 있다. '나'라는 인간은 당연히 마블 영화의 히어로나 놀란 영화의 주인공들 보단 독립영화의 누군가에 가까운 편이니, 이쪽이 더 끌리는 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관점에 따라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가 달라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올해는 영화와 드라마 쉰두 편을 봤다. 1년이 52주니까, 한 주에 하나씩 본 셈이다. 서너 시즌의 드라마를 한 편으로 치기도 했으니 편수로만 따지면 아마 100편은 족히 넘을 테고. 작년에는 통틀어 서른 편 정도를 봤는데, 거의 두배에 가까운 수를 본 셈. 아무래도 영화관 갈 일이 줄어들고 그만큼 집에서 볼 시간이 늘어나서 그랬나 보다.
올해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과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꼽겠다. 너무 좋아서 포스터까지 구해 집에 붙여 놨다. 작년 최고의 영화들이었던 '메기'와 '윤희에게' 자리에 포스터들을 그대로 붙여 놨다. 두 영화는 '옥주'와 '동주'라는 남매가, '김찬실'이라는 사람이, 정말 살아 숨 쉬는 것같이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영화를 볼 때뿐만 아니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들이 어딘가에서 살아 내고 있을 것만 같은 영화들.
'남매의 여름밤'은 부둥켜안고 울어야만 '가족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속 옥주와 동주의 가족처럼 자기 이기심에 따라 움직이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생일을 축하하며 각자의 행복을 느끼는 모습들에서 가족의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또한 우리 일상 속 등장인물들이, 결국 우리에게 '복'이 돼 준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며 가며 만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던 사람들조차도 누군가에겐 복이며, 내게도 복일 수 있겠다는 점을, 신이 내린 일종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듯하다.
이 영화들에 이렇다 할 악역도, 큰 난관 봉착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어쩌면 그게 우리들 인생이지 않은가. 인생을 그대로 그리는 게 영화일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영화적'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건 우리들의 삶이라고 대답하겠다. 그 여름의 남매처럼, 그 겨울의 찬실이처럼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