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평역 1번 출구 꽃돼지토스트. 예. 여깁니다 여기.
"설탕 케첩 넣으세요?"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다면 그는 꽃돼지토스트 초보가 분명하다. 이모님이 그걸 넣을 수 있도록 만드신 건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말마따나 설탕과 케첩은 이 토스트의 맛을 완성시킨다. 혹여 정말 건강하게 먹고 싶어 이 둘을 빼 달라고 할 바에야 그냥 안 먹는 게 낫다. 아니 그렇게 건강을 바라면 길거리에서 파는 빠다 바른 토스트를 안 먹는 게 맞고.
야채 토스트는 2000원, 치즈/햄 토스트는 각각 2500원, 햄치즈 토스트는 3000원. 가격도 적당하다. 처음 먹는다면 무조건 햄치즈를 추천. 스팸이나 베이컨 같은 짠 햄이 아니고 김밥햄 스타일의 햄이라서 토스트와 아주 조화롭다.
식빵이야 버터 바르고 구우면 다 맛있다. 이 토스트집의 정수는 깻잎을 넣은 계란지단과 머스터드 소스로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다. 길거리 토스트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무참히 짓누르는 건 한 입 베어 물면 이 사이로 새 나가는 깻잎 향이 먼저요, 알싸하려 하다가도 끝에 다다라 달콤해지는 머스터드 소스가 둘째다. 케첩과 머스터드 조합은 말해 뭐하겠는가.
식빵, 샐러드, 지단의 완벽한 삼위일체와, 그를 보좌하는 햄과 치즈는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맛이다. 붕어빵을 정말 좋아하지만, 이 순간엔 '가슴속 3천 원'이라는 밈을 붕어빵이 아닌 꽃돼지토스트를 일컫기 위해 사용하고 싶어 진다.
글을 쓰는데 침이 고인다. 신나서 상술한 이 토스트집은, 장한평역 1번 출구에서 스무 걸음을 가면 만날 수 있는 '꽃돼지토스트'다. 1번 출구 나오면 찾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눈부신 네온이 나를 감싼다(?). '단골이 많아 싸구려 재료를 쓸 수가 없다'는 내용의 현란한 전광판은 쪼매 촌스럽긴 하다.
첫 만남이 언제였더라. 아마 쌀쌀한 바람이 조금씩 불던 10월 초쯤인 걸로 기억한다. 퇴근하고 저녁에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네이버에 "장한평역 맛집"을 친 게 화근이었다. 전형적인 홍보글 범벅(?) 블로그였는데, 거기서 장한평역 1번 출구에 있다는 토스트 집을 소개하는 글을 만났다.
글은 여느 맛집 홍보글처럼 구성돼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자주 보이는 스티커(이거 신뢰도를 확 떨어트린다. 진짜로...)가 중간중간 나오는 그런 글이었다.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역이랑 가까우니 퇴근하는 길에 들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날은 까맣게 잊고 집으로 직행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허기진 퇴근길에 문득 생각이 났다. 역에서 바로 나가면 길 건널 필요도 없으니 편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토스트집. '단골이 많은 맛집 꽃돼지토스트'라는 문구가 흐르는 네온 간판이 시선을 강탈한다. '뭐가 대단하다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때의 내가 미련하다.
아무 생각 없이 맛있어 보이는 치즈 토스트를 시켰다. 설탕과 케첩을 넣겠냐는 이모님의 질문에도 그냥 뜻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그렇게 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이모님은 기다리며 어묵 국물이라도 먹으라 권하셨다. 먼저 와 있던 아저씨가 너무 맛있게 마시고 있기에 나도 넙죽 받아먹는다. 눈이 번쩍. 육수 맛에 놀라 일단 어묵부터 하나 집는다. 어라, 맛있네. 그래도 토스트랑 어묵은 다르니까.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고, 어묵 하나로 위가 놀라지 않게 준비를 시켜 놓았다. 어묵을 다 먹을 때쯤 토스트가 딱 준비됐다. 까만 비닐봉지에 싸주시려 하기에 그냥 달라고 했다. 쓰레기는 토스트를 싸는 종이면 충분하니까. 수고하시라고 인사하고 방향을 돌려 한 입을 베어 무는데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집을 왜 이제 알았지. 모르고 산 수개월이 억울해지는 맛이었다.
그 뒤로 두어 달 동안 매주 한 번은 꼭 들렀다. 출퇴근할 때는 나름 같은 시간에 갔는데, 요샌 재택을 하다 보니 매번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가지는 않게 된다. 이모님도 이제 나를 알아보시는 눈치인지 두어 번은 말을 걸어 주신다. 어제 찾아갔을 때도 부쩍 날씨가 얼어붙었다며, 요즘 많이 춥지 않으냐고 말을 건네주시기에 장갑도 안 끼시고 토스트 만드시는 이모님이 더 추우시겠다고 답했다. 진심이다. 이모님 아프시면 절대 안 돼 네버..
대화를 잇다가 영업을 언제까지 하는지 여쭸다. 블로그에 불성실하게(?) 그런 내용은 쓰여 있지 않길래 언젠가 꼭 여쭤야지 생각하고 있었던 차. 이모님은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영업한다며, 요즘은 새벽이 제일 춥다고 덧붙였다. 참말로, 정말 진심으로 건강 조심하시라고, 또 오겠다고 말하고 토스트를 받아 들어 자리를 떴다.
해방촌을 떠날 때 유일하게 아쉬웠던 건 정든 카페와의 이별이었다. 카페든 식당이든 여러 군데 정을 붙이질 못해서 한 군데만 주야장천 가는 편이라 더 그랬다. '그런 카페'는 많아도 '그 카페'는 없을 테니, 하고 생각했던 터다. 어쩌면 이 토스트집이 그 자릴 대신하려나 보다. '그런 토스트'는 여럿이어도 '꽃돼지토스트'는 유일무이하지 않은가! 아마 이모님은 모르시겠지, 이렇게 열렬한 팬이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