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교회가 나올 때

흠칫 놀라 일시정지를 누릅니다

by 버들

혼밥하며 제일 아쉬운 건 정주행할 드라마가 없을 때. 그럴 때면 간간이 소식이 들리는 한국 드라마를 보곤 하는데, 요샌 신세경, 임시완 주연의 '런온'을 보고 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영화 번역가와 육상 국가대표 간의 '사랑 이야기'. 그렇긴 해도 '김은숙'식 대사 티키타카(런온의 박민숙 작가가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 출신이라고 한다.)가 꽤나 재밌고, 편집도 톡톡 튀고, 영화 번역가인 주인공을 의식한 듯 곳곳에 나오는 고전 영화의 오마주(?)들을 보는 맛이 있어서 흥미롭게 보고 있다. 서사야 전형적인 것 같아 조금 아쉽지만, 밥 먹으면서 보는 드라마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아서.


그중에서도 내가 눈여겨보고 있는 건 극 중에서 묘사되는 기독교인과 교회의 모습. (이 정도면 직업병..) 임시완이 연기하는 기선겸의 아버지는 4선 국회의원인 기정도다. 드라마는 그를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묘사한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임을 의미하는 상징과 대사가 많은 편.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장면의 처음도 '기도'로 시작(다른 가족들이 모두 눈을 감지 않고 있다는 게 포인트)하고, '하나님'이나 '회개', '기도'와 같은 단어가 대사에도 꽤 녹아 있다. '장로'인 기 의원과 아내인 육지우가 교회를 방문하는 장면도 꽤나 길-게 할애해 묘사했다.


물론 그는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이다. 아들에게 손찌검은 기본, 아들을 감시하라며 훈련에 통역가로 함께하는 오미주(신세경 분)에게 뒷돈을 챙겨주기도 한다. 이것만 보면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위선적인 기독교인'과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국회의원 장로는 이제 좀 식상해요..

특이한 점은 단순한 '위선' 그 이상의 묘사들도 함께 보인다는 것. 기정도 의원 부부가 교회에 들어가는 장면부터 목사를 만나 기도하는 장면, 또 교회 식당에서 식사하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장면은 특히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교회 내 식당이란 장소는 꽤나 많은 암투가 벌어지는 곳이 아니던가. 나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교회 식당'을 본 적이 없다.), 교회 뒷마당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까지 허투루 볼 장면이 없어 보인다. '내 ID는 강남 미인'이나 '사랑의 불시착'처럼 기독교인들을 작위적이거나 우스꽝스럽게만 그리지도 않았고, 소위 '선거용 교회 출석'을 고깝게 여기는 캐릭터인 육지우가 있다는 것도 또 다른 특이점이다.


교회에서 '집사'인 육지우는 자기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를 앞에 두고 눈을 감지 않는다. 짬 있는 그리스도인은 알겠지만, 기도할 때 눈을 감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저항'이다. 그는 "이 가정에 영원한 사랑을 허락해 달라"고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목사를 잠깐 째려보기도 한다. 이후 장면에서는 기 의원과 함께한 교회 출석을 두고 "'전시행정'에 동원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정도나 육지우나 둘 다 '겉으로만'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한 사람은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반면, 다른 사람은 그에 동원되면서도 일종의 반항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차이점이 회차를 진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갈등을 만들고, 그를 해소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꽤나 흥미로울 듯하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나 드라마 역사 속에는 없던 기독교 묘사가 되겠지.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에 교회가 나오면 부끄럽다. 대부분 개신교는 '악'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당연히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많은 개신교인들이, 종교로 자기 악을 가리고 있다는 뜻이다.

KBS 주말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에 나온 교회 모습. 병원 부속 교회는 주인공에게 피난처로 묘사된다. 나름 긍정적인 표현.

얼마 전 우연히 들은 힙합가수 '염따'의 신곡 '존 시나'에서, 피처링으로 참여한 'Northfacegawd'은 "사랑제일교회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싸대기"라는 가사를 벌스에 썼다. 어떤 맥락에서 나왔을지 쉽게 예상되는 가사라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착잡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가 '비판'의 대상이 아니게 됐는지도 모른다. 저들은 교회 다니는 이들을 보며 '조롱하며 무시해도 될 놈들'이라 여기고 있는 걸까. 오늘도 조용히 방 안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 나는 괜히 억울하다. 세상은 교회를 이렇게 보고 있는데, 여기 내 책임도 없지 않겠지. 씁쓸한 미소만 무지하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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