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2019)
* 이 글에는 '문신을 한 신부님'(2019)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간 '성직자로 위장한 범죄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는 꽤 있었다. 미국 영화의 '시스터 액트' 시리즈가 그랬고, 한국 영화 중에서도 '할렐루야'(1997)가 있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코미디 영화라는 점. 범죄자가 돌연 가짜 성직자가 된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데도 이 같은 영화가 있어 왔다는 건, 그 속에서 풍자되는 종교의 모습이 대중에게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방증일 테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부터 충격을 주는 '문신을 한 신부님'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그 파격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게 아니라 종교와 믿음에 관한 성찰로 사용한다는 접근도 앞선 영화들과는 다르게 매력적이다. 다니엘이 엘리자에게 자신을 '신부'라고 거짓으로 소개하는 첫 장면부터 우리네 믿음의 모순은 드러난다. '사람들은 신이 아니라 사제복(으로 대표되는 종교, 혹은 종교 권력)을 믿고 있을지 모른다'는 철학적 질문이 그 짧은 장면에 드러나 있다.
이 '문제적 사제'는 어쩌면 예수를 표상하고 있는지 모른다. 당시 예수도 엄청난 문제적 선지자 아니었던가. 우연찮게도 다니엘도, 예수도 목수였다. 다니엘은 마을 사람들이 '마녀사냥'하는 '과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아이들 사이로 찾아가 함께한다. 미사보다는 마을 잔치를 즐기고, 권력에 조아리지 않는 그를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은 마치 예수를 흠봤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문신 위에 사제복을 덮고, 수많은 미사와 여러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다니엘도 변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믿음으로 포장한 이기심을 '욕설 가득한 편지'로 풀어내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분노하고, 그들에게 '화 있을 진저'라고 경고하는 그지만, 그 또한 자기 존재 자체가 거짓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모순과 맞서 싸운다. '돈을 주지 않으면 정체를 밝히겠다'는 소년원 동료의 출현은 그 모순점을 극대화한다. 마치 은 서른 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출현처럼.
'할렐루야'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범죄자가 성직자가 되고, 목회 활동을 하며 변화해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결말은 극과 극이다. '할렐루야' 속 박중훈은 얼결에 목회를 하며 죄를 뉘우치게 되고, 제 발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지만, 이 영화 속 다니엘은 '들키고 붙잡혀' 소년원에 돌아가게 된다.
보누스와의 마지막 혈투에서 다니엘의 본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진정 다니엘이 예수를 닮은 모습으로 묘사된 것이라면, 팔을 벌린 채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했겠지만, 그는 오히려 보누스를 수차례 때려눕히고 머리로 처박는다. 기절한 보누스를 내버려 둔 채 뛰쳐나가는 다니엘의 피떡이 된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분위기는 섬뜩하다.
'남을 죽여 내가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라면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의 아내를 '빌어먹을 년'으로 몰았던 마을 사람들의 이기심과 그의 마음은 다르지 않으리라. 사제복을 벗은 그는 자연스레 문신을 한 범죄자의 몰골로 돌아온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을까. 인간이 예수를 닮기란 정말이지 요원한 일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