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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Nov 14. 2021

힘들면 쉬었다 가

쉬었다 가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려면

3개월치를 끊었다. 회사 같은 팀 동료들이 자꾸만 등쌀을 대는 바람에 이끌려 간 그룹 PT 이야기다. 체험 차 방문한 밝은 체육관(?)은 무시무시한 운동의 빡셈을 조명으로 애써 가리는 듯했다. 운동은 역시 고됐다. 헉헉거리며 운동을 마친 후 숨이 가라앉지도 않은 채로 등록지에 서명을 했다. 무거워지는 몸을 보며 더 이상은 운동을 미룰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동기부여도 더해질 것을 아니까.. 사실 이제 더는 댈 핑계도 없었다.


등록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선생님의 별 거 아닌(?) 한마디 때문. 오늘의 동작을 완수하고 나서 진행되는 팻 버닝(fat burning) 시간이었다. 강도 높은 동작들에 죽을 듯이 헥헥대는데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힘들면 쉬었다 하라"고 말했다.

이런 운동을 50분간 진행한다. 하루 중 가장 밀도 있는 50분이다.

문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옛날 크로스핏 도장(?)에 잠깐 다닐 때 생각이 난 탓이다. 그들 사전에 "쉬었다 하세요"는 없었다. 강사는 물론이고 수강생들 모두가 "할 수 있다" "마지막 하나!"를 입 모아 외쳤다. 어쩜 다들 그리 죽어라 운동하는지 힘들다고 말하거나 대놓고 짜증을 내기도 어려웠다. 몰아치는 언어 사이에서 나랑은 페이스pace가 조금 다르네,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하면 된다'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왕창 있었고, 그 분위기에 못 이겨 연장 등록은 하지 않았다.


운동 못하는 놈의 자격지심 비슷한 셈이지만 나는 그 분위기를 버틸 수가 없었다. 동작 하나라도 더 하게 만들어서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선의임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마치 그 순간에 할당량을 완수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못난이가 되는 것 같았다. "하면 된다"는 말이 가진 '싸함'을 매번 되뇌고 살기 때문일까.


운동 한 시간 하는 꼴에 이렇게 진지해질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쉬었다 하세요"에 진짜 쉬진 않았지만 괜히 위로가 됐다. 일상에서도 무작정 뒤는 안 돌아보고 달리기만 하고 있지는 않나 되뇌어 보기도 했다. 무심코 한 말이라도 가닿는 사람에 따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운동 한 번 하는데 생각이 이렇게나 많이 들었다.


우연찮게도 이 그룹 PT 스튜디오 이름은 '좋은습관'이다. (뒷광고 아님) 자꾸만 몰아치는 세상에서 이웃들에게 "쉬었다 가"라는 말을 건네는 게 리터럴리literally 좋은 습관 아닐까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머리는 핑 돌고 다리는 몸무게를 못 이겨 후들거렸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은 가벼웠다. 그래도 이건 너무 힘들잖아.. 중얼거리면서도 다시 열심을 내보기로 작정했다. 힘들면 쉬었다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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