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 ADHD 의사가 되다. (1)
사업을 해서 아들이 꼭 필요한 집은 아니었다.
명문가의 몇 대 독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지극히 가부장적인 집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집에서 첫째 아이로 딸이 태어났다.
정월 초사흘같이 센 날에는 아들이 태어나야 하는데
팔자 사납게 여자애가 태어났다고 다들 실망하는 눈치였다.
(양력으로 출생신고를 하면 될 일을...;;;)
그래서 매년 내 생일에는 차례 지내고 남은 음식들이 생일상의 전부였다.
생일상은 아침에 차려야 되는데 설 연휴에는 빵집과 시장이 문을 열지 않는다는 핑계였다.
내가 내 생일 케이크란 것을 받아본 것은 10살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를 자식이 아닌 실패작 정도로 생각한 아버지는 다음번에는 반드시 아들을 낳으라고
(아들 낳는) 실마리를 느끼라는 의미로 옥편을 찾아 내 이름을 지어줬다.
하지만 이때 아버지는 크나큰 실수를 했는데 한 글자의 뜻을 잘 못 알고 '느끼다' 가 아닌
'흐느끼다, 탄식하다'는 뜻을 가진 불용한자 (사람 이름에 들어가면 안되는 한자)를 내 이름에 썼고,
그 한자가 들어간 내 이름운은 초년운은 나쁘지만, 말년운은 더 최악인 이름이었다.
그 이름 덕분인지 내가 태어난 지 14개월만에 둘째인 남동생이 태어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불행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다. 나는 19살 부터 쭉 양력 생일을 챙기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쓰게 될 이야기는 불우한 어린 시절에 대한 원망도, 한풀이도 아니다.
이런 불우한 환경과 ADHD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의사가 되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내 이야기를 보며
삶이 힘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서 적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