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숙제만 없었다면 책 읽기가 즐겁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간혹 재미있는 책을 만나도, 감상이라고 할 만한 뭔가를 길게 쓰기는 어려워 자책했던 적이 많았다. 줄거리 약간에 한두 줄의 느낀 점을 얹어, 다른 아이들이 미리 제출한 숙제 더미의 맨 밑에 쑥 집어넣고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독후감 ‘제도’라는 말이 차라리 어울릴까? 커가면서 운 좋게 책 읽기와 글쓰기의 재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독후감 숙제에 고통받던 내면의 아이는 여전히 치유되지 못했고 여기 남아 있다.
독후감, 왜 쓰라고 하나?
읽기와 쓰기를 함께 했을 때 교육 효과가 높아진다거나, 쓰기를 통해 읽기가 완성된다는 학자들의 안일한 주장은 다시 언급하기도 피곤하다. 단, 독후감을 이런 추상적 논리로 강요한다면 읽기 교육과 쓰기 교육을 분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문도 많으니 손수 찾아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릴 뿐이다.
독후감은 ‘숙제’다. 많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권장 도서 목록은 학교의 학문적 체면을 위해 또 독후감 과제나 독후감 대회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마련된다. 유명 대학에서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을 좀 섞어 100권쯤 발표하면, 고, 중, 초등학교로 내려가면서 선행학습 느낌의 독후감 쓰기도 생겨난다.
하지만 분명 독후감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책도 많다.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방대한 분량과 깊이를 가진 것도 있고, 감상을 표현하기보다는 그냥 교과서로 쓰면 좋은 과학기술 분야의 책도 보인다.
독후감, 무엇을 어려워하나?
장르에 대한 지식은 글을 쓸 때 특히 필요하다. 논문을 쓰라고 하는데 ‘기승전결’ 같은 작법을 가져다 대면 낭패다.
그런데 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쓰면 독후감이 되는지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 선생님들은 '자유롭게' 쓰라는 세상 편한 소리만 하니 아이들은 더 큰 부담을 느낀다. 줄거리를 다시 언급해야 하는지, 책의 내용과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도 되는지, 글쓴이의 다른 작품을 언급해도 되는지 명확한 기준도 합의도 없다.
독후감 제도, 계속 남아 있어도 될까?
모국어 글쓰기에 대한 불안감은 외국어를 공부할 때 느끼는 불안의 정도에 비해 절대 낮지 않다. 자기가 쓴 글을 다른 사람 앞에서 읽어야 할 때의 긴장감, 빨간색으로 정성스레 첨삭해 주시는 선생님께 숙제를 제출해야 할 때의 두려움을 상상해 보라.
글쓰기를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불안감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긍정적 감정 환경(Positive Emotional Environment)’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가 있는 한 절대 그런 심리적 안정감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