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영어에 칼 대기
원어민 선생님은 아이들의 글을 첨삭 지도한다. 빨간 펜으로 북북 그어 버리거나, ‘He’, ‘She’ 같은 주어가 나오면 빼먹은 ‘s’를 동사에 붙여준다. 원어민의 직관이 없다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인 관사(a, the)는 첨삭의 단골 메뉴다.
영어 선생님은 오류를 수정하는 것을 당연한 임무로 여긴다. 하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감까지 고민하는 선생님은 얼마나 있을까? 자신의 글이 빨간색으로 난도질된다면 아이들은 계속 글을 쓰고 싶어 할까? 그걸 이겨내면서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서 영어를 바라본다면 아이들은 영원히 영어에 가까워질 수 없다.
첨삭은 0에서 100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1~99’의 모든 단계를 질책하고 칼을 대어, 100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모든 실수와 오류에 수술을 감행한다면, 그 상처를 안고 100에 도달할 아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아이들이 영어를 공부하고 싶지 않게 하는 ‘독성이 있는 선생님(toxic teacher)’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첨삭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험에서 문법 규칙을 알고 있는지 평가하고, 말하기 역시 문법적 오류가 없는 원고를 암송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한국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게 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단, 유학과 이민을 준비하는 TOEFL, IELTS 학습자에게는 첨삭의 강도를 높였다. 글이 빨간색으로 뒤덮여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맷집 있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예외다.)
학습자의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는 인식은 오류가 모국어의 간섭(interference) 때문이라는 견해에서 시작된다.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이 달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도 걸핏하면 콩글리시가 되었다고 하니 오류 수정에 대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학습 동기가 떨어지고 불안감이 높아지는 부정적 측면은 영어 학습에서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모국어로 글을 쓸 때도, 누군가 자신의 글을 평가한다는 것에 얼마나 마음이 쓰이는가. 아이가 글쓰기에 자신감을 잃게 하는 것은 단 한 번의 독후감 숙제일 수도 있다.
외국어 학습에서 나타나는 오류는 학습자가 자신의 언어 체계를 세우고 이를 실험하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래리 셀링커(Larry Selinker)와 같은 사람은 이 과도기적 언어를 중간어(interlanguage)라고 불렀다. 즉, 오류는 아이들이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산물이며, 칼보다도 강한 빨간 펜으로 베어 버릴 대상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오류를 수정의 대상이 아닌 성장의 증거로 보는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오류를 발견하고 고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환경에서 아이들과 다시 한번 즐겁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