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함께, 연대의 가치를 일깨우는 판타지

책 <기병과 마법사>를 읽고

by 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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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이라는 말에 단번에 신청해버린 <기병과 마법사>. 책을 받자마자 내가 판타지 소설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했다는 걸 깨달았다. 배경은 한국, 등장인물은 스물일곱의 여성이다. 판타지라는 장르에 당연하게 배경이 외국일 줄 알았고, ‘기병’과 같은 단어에 등장인물은 남성일 줄 알았다. 너무 편협했던 나의 고정관념에 깜짝 놀라는 것으로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이 책의 저자 배영훈 작가는 SF장르에 유능한 작가로, 다채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데뷔 20주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이 작품은 작가의 지난 이야기들과 결집된 색들이 묻어나있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그의 지난 작가생활의 총집합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섬세함과 정교함, 그리고 탄탄하면서도 신뢰감 있는 이야기들의 결정체였다.


배경은 한반도 북부와 그 너머의 가상공간, 전근대적 시기, 폭정으로 어지럽혀진 나라의 모습, 빈번한 세력 싸움. 이 모든 배경들은 익숙하지 않은 듯 익숙했다. 군사 용어들, 다양한 한자어들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꽤 재밌었다. 나름 상상하고 그려가며 읽다보니 어느 새 이 세계 속에 몰입하고 있었다.


주인공 영윤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지도 드러내지도 못하며 살아오다가 군 지휘관이 되어 조력자 다르나킨과 함께 척박한 세상을 개척하게 된다. 그녀는 초인적인 힘을 지녔지만 이에 휘둘리지 않고 겸손하고 단단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포기를 할법한 상황에서도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지혜롭게 난관을 극복해나간다.


조력자 다르나킨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혼동을 느끼는 인물로 표현되지만, 단단한 윤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같은 목표의식과 서로에 대한 믿음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힘을 갖게 한다.


이들의 원정길에 영혜는 ‘1021’이라는 숫자를 마주하게 되는데, 윤해는 이 숫자가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뜻을 품고 있고, 무엇을 예언하는지 윤해는 조력자들과 함께 이 뜻을 풀어간다. 재앙의 반복, 단절된 시간과 기억을 의미하는 이 숫자를 통해 윤해는 잃어버린 세계와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조력자들과 함께 노력한다.


책의 마지막 즈음에는 괴물을 이겨내기 위해 윤해가 초원의 모든 방향으로 척후를 보내고, 다르나킨은 윤해의 신호를 보자마자 파괴자가 다가오는 쪽을 향해 진을 펼치고, 군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시간을 벌어주며 작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힘을 합치는 모습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윤헤라는 인물의 단독적인 대범함과 위대함 보다는, 조력자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화합과 연대의 중요성이 크게 와 닿는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이겨내고 계속되는 재앙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함께 어우러지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가치임을 일깨워 준다.


분열과 갈등이 빈번한 요즘, 모두가 다시 인지해아 할 핵심적인 가치는 연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형 판타지의 신선함과, 여성 주인공의 초월적인 힘, 그리고 독단적인 영웅보다 함께의 힘을 알고 나아가는 가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기병과 마법사>를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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