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하는 읽기와 쓰기

책 <의미들>을 추천하며

by 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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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축약되어 있는 듯한 ‘의미들’ 이라는 책의 제목. 어떤 표면적인 이야기가 아닌 깊은 성찰적 이야기가 담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흘려보냈거나, 놓쳤거나, 단순하게 치부해 버렸을 것들. 혹은 인지하지 못했거나 무감각했던 것들을 일깨우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은 저자 수잰 스캔런이 3년간 정신병동에서 입원하며 보내온 날들을 회고하고 성찰한 글이다.


책의 표지에는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이라는 부제가 덧붙여져 있다. 정신적인 고통과 괴로움을 읽기를 통해 해소시키고 고통의 이유와 의미를 찾은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들었다. 마음의 고통을 승화시킨 저자의 회고, 그 과정에서 나를 찾고 삶의 이유를 깨우치는 흐름을 함께 따라 가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치유하지 못한 상처는 해소될 때 까지 지독하게 나를 따라다닌다. 수잰 스캔런의 어릴 적 상처는 스무 살에 이르러 그녀를 자살시도하게 만들었다. 이내 정신병동에 입원하였고 삼년 간 그곳에서 부단한 투쟁을 하게 된다. 그녀가 이곳에 입원했던 시기엔 다중인격장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던 시기였다. 과거와 현재의 나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으로부터 병의 원인을 찾아낸다. 규격화된 여러 병명들 중의 하나로 병명이 선택되고, 그에 맞는 규격화된 치료를 하게 된다. 저자의 병은 오히려 악화되게 된다.


개개인의 고통이 하나의 같은 묶음으로 묶일 수 있을까. 정신병원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이 그녀를 더욱 옥죄게 마든다. 치료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들이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킬 수 있는 의료 시스템만을 의지할 순 없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임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저자는 나를 마주하고, 나를 치유하는 첫 단추를 ‘읽는 것’에서 찾게 된다. 특히 고통과 상처를 떠안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녀의 삶을 관통한다.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실비아 플라스, 제닛 프레임의 이야기들. 그녀들의 슬픔과 광기,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하는 삶에 대한 고군분투적 서사가 저자의 삶을 새롭게 환원시킨다. 수 없이 펼쳐지는 인생의 이야기들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고 이를 곱씹고 소화시키는 것. 이는 삶이 자신을 집어삼키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책이란 의사소통에 관한 것임을 몰랐다. 혹시 알았다 해도, 이때 이전까지는 그게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권의 책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말하는 한 방식이다. 이 책은 나에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감의 다른 방식들을 -p.184


읽기의 행위는 시공간을 넘는 연결이자 소통이다. 책 속의 인물들과 또는 과거와 미래의 나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다. 쓰라린 상처를 다시 붙잡아 해석하고 또 해석하는 것, 타인의 삶과 견주어 나의 의미를 발견하고 깨우치는 것, 외면했던 것들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것. 이 일련의 과정이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된다.


더불어 나의 고통을 꺼내어 쓰는 행위는 고통을 더 큰 의미에서 이해하게 한다. 고통은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닌 강인한 자아를 만들고자하는 성장통임을 깨닫는다. 내 이야기를 꺼내어 쓰고 이를 나누는 것의 저력을 체감한다. 나의 서사는 나를 구원하고 또 다른 이들을 구원할 수 있다.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은 그녀의 마음의 병에 대한 치유기록 그 이상이었다. 고통과 광기의 의미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기록이었다. 병과 나에 대한 처절한 저항과 끈질긴 투쟁은 그녀가 주체적으로 세상을 집어삼키게끔 만들었다. 나를 구원하는 읽기와 쓰기, 이 원초적인 행위의 힘을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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