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설정되는가
PM의 여러 역할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우선순위 설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순위 설정이 왜 중요한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모든 회사, 모든 팀은 한정된 리소스(시간, 사람, 돈) 안에서 임팩트를 내야 한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넘쳐나는데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 당연히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일부터 골라내야 한다. 이상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히 초보 PM들은 비즈니스 요구사항, 사용자 피드백, 기술 부채 해결, 버그 수정 등 사방에서 쏟아지는 과제들 속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메이커들과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그래서, 뭐부터 할까요?" 라는 메이커들의 질문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오늘은 이 지긋지긋한 우선순위 설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어떻게 하면 이 혼돈 속에서 길을 찾고, 내 제안에 설득력을 더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부터 깨고 가자. 우선순위 설정은 '아트(Art)'의 영역이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초보 PM들이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우선순위를 '계산'하려 든다. A 과제는 임팩트 10점, 중요도 8점, 시급성 7점... B 과제는 임팩트 7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매겨서 총점이 높은 순서대로 줄을 세우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시중에 나온 책이나 강의에서도 이런 프레임워크를 소개하곤 한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다 부질없다. 이런 식의 정량화는 불가능할 뿐더러 의미도 없다. 임팩트? 중요도? 시급성? 이걸 어떻게 객관적인 점수로 환산할 것인가? 설령 억지로 점수를 매긴다 한들 사람마다 그 점수를 받아들이는 기준이 제각각이다. 당신의 '임팩트 10점'이 동료에게는 '5점'짜리로 보일 수 있다는 거다.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모두가 동의하는 우선순위를 만들 수 없다.
우선순위 설정의 핵심은 '정확한 계산'이 아니라, PM이 '합리적으로 느껴지게끔' 우선순위를 '적절히' 설정하는 것이다. '느껴지게끔'과 '적절히'라는 단어가 다소 애매하고 비과학적으로 들릴 수 있다.
우선순위 설정의 핵심은 얼마나 큰 공감대(Consensus)를 얻을 수 있는가이다.
앞서 말한 임팩트, 중요도, 작업 난이도, 시급성, 비용 등의 요소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당연히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 다만 이것들을 '계산'의 도구로 삼는 순간 함정에 빠진다. 매출이나 비용처럼 명확히 숫자로 떨어지는 요소도 있지만, '중요도', '시급성', '사용자 경험 임팩트' 같은 것들은 본질적으로 정량화하기 어렵다. 특히 당장의 매출과 관련 없는 기술 부채 해결이나 컴플라이언스 이슈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초보 PM들이 우선순위 설정에서 좌절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량화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정량화하려다 보니 막히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려 애쓰기 때문에 노력은 노력대로 들어가고, 결과는 결과대로 안좋다.
대신, 관점을 바꿔보자. 우선순위 설정의 목표를 '계산'이 아닌 '공감대 형성' 으로 맞춰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과제를 팀 혹은 회사 전체에 제안했을 때, 사람들이 "아, 이건 정말 필요하겠네!", "이거 하면 확실히 좋아지겠는데?" 라고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엄청난 매출 증대를 가져다주거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거나, 수많은 사용자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고통을 해결해주거나, 회사의 존속을 위협하는 컴플라이언스 리스크를 막아주는 과제. 이런 것들은 누가 봐도 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 즉, 조직의 공감대가 클 수밖에 없는 아젠다다. 이런 과제들은 우선순위를 높게 설정했을 때 비교적 쉽게 '통과'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하더라도 투입되는 비용(시간, 리소스)이 너무 크거나,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결과를 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그거 할 시간에 차라리 다른 거 하는 게 낫지 않아?" 라는 반문에 부딪히기 쉽다.
우선순위 결정의 핵심을 중요도, 시급도, 임팩트와 같은 요소가 아닌 '공감대' 그 자체로 두면,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사전에 형성된 조직의 공감대' 가 있는지 여부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제품이 '높은 이탈률'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에 이미 팀 전체 혹은 회사 전체가 공감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는 '이탈률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다른 개선 과제들에 비해 특별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이탈률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워크가 잘 맞고 목표 얼라인이 잘 된 팀에서는 PM이 우선순위 설정에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간단한 논의만으로도 빠르게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과제의 규모가 매우 크거나, 설득해야 할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는 경우(특히 리더급 이상을 설득해야 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는 우선순위를 확보하기 위해 PM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왜 이 문제를 지금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배경 설명, 데이터 기반의 설득력 있는 근거 제시, 때로는 내 아이디어를 지지해 줄 든든한 지원군 확보(소위 '정치'라고 불리는 영역)까지 동원해야 할 수도 있다. 즉, 능동적으로 공감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숙련된 PM들은 과제들의 우선순위를 능숙하게 조율하고, 팀원들도 큰 저항 없이 그 흐름을 따라간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각 과제의 대략적인 임팩트, 작업량, 비용 등을 빠르게 '감'으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논리를 구성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초보 PM들에게는 이런 '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앞서 우선순위 설정은 '공감대'의 영역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설득의 논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고려 요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것들을 '점수'로 환산하려 하지 말고, '설득의 재료' 로 활용해보자.
임팩트 (Impact/성과): 이 과제가 성공했을 때 어떤 긍정적인 결과(Value)를 가져올 수 있는가? 주로 매출 증대, 비용 절감, 신규 사용자 확보, 기존 사용자 이탈 방지 등이 해당된다. 하지만 꼭 정량적인 것만 임팩트는 아니다. 당장의 숫자로 나타나진 않더라도, 정말 많은 사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역시 강력한 임팩트다. (물론 정성적인 임팩트도 가능하다면 숫자로 보여주는 게 설득에는 더 유리하다.)
비용 (Cost/Effort):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얼마나 많은 자원(개발 시간, 인력 등)이 필요한가? 당연히 비용이 클수록 우선순위를 높이기 위한 설득의 허들은 높아진다. 물론 임팩트가 압도적이라면 큰 비용도 감수해야겠지만, 그럴 경우 작은 규모의 실험이나 PoC(Proof of Concept)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먼저 검증하여 설득력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시급성 (Urgency): 이 과제를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정 마감일이 정해져 있거나, 지금 놓치면 기회가 사라지는 경우(법규 변경 대응, 시즌 이벤트 등)에 주로 고려된다.
리스크 (Risk): 이 과제를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는 무엇인가? 그 리스크가 발생할 확률과 발생했을 때의 심각도는 어느 정도인가? (예: 보안 취약점 방치, 핵심 기술 부채 심화 등)
과제의 신뢰도 (Confidence): 이 과제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아무리 임팩트가 커 보여도 기술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거나, 성공 확률이 너무 낮은 '도박'에 가깝다면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받기 어렵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 우선순위 설정은 결국 아트의 영역이다. 정해진 공식이나 만능 프레임워크는 없다. 수많은 변수와 맥락 속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때문에 PM은 우선순위를 '잘' 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담당 제품과 도메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쌓고, 다양한 성공과 실패 경험을 통해 각 과제의 무게를 가늠하는 '감'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판단을 바탕으로 동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 설득하는 능력이다.
결국 당신의 제안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이면에 탄탄한 논리와 데이터뿐 아니라, 함께하는 동료들의 신뢰와 공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렇게 경험을 쌓아가며 당신만의 우선순위 설정 '아트'를 완성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