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기억 05

마지막 화

by 전우진

‘그러니까 저게 뭐였지?’


눈을 떴을 때 식탁 위에 하얀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그러다 그게 무엇인지 바로 생각이 났다. 인선이의 유골함이었다. 문뜩 희정이에게 맡기고 간 고양이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희정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희정이는 받지 않았다. 희정에게 한국에 돌아왔다는 문자를 남기고 우진에게 전화했다. 우진이에게 페루에서 있었던 일과 인선이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자 우진이는 요새 단편영화 촬영 중이라 바쁘니 다음 달쯤에나 보자고 했다. 나는 이제 인선이가 없어서 페루 여행은 힘들어졌으니까 다른 여행지를 알아보자는 농담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일하던 레스토랑에 전화를 걸어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다고 했다. 레스토랑 매니저 형이 오늘 저녁에 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지만, 정리할 것이 많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평소와 다르게 일어나 레스토랑에 가서 식자재를 다듬고 요리 보조를 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청소한 다음 다시 저녁 식자재를 다듬었다. 저녁 시간이 시작되면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틈틈이 모자란 식자재를 다듬고 틈틈이 설거지를 했다. 틈틈이 남은 음식들을 몰래 먹어 치웠으며 틈틈이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좌변기에 앉아 서 있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렀다. 영업이 끝나고 매니저님이 회식이나 하자고 해서 레스토랑 문을 닫고 주방 사람들 몇 명과 안주를 만들어 와인을 마셨다. 일을 마치고 술을 마신 뒤 집에 들어와 곯아떨어진 다음 알람 소리에 눈을 떠 서둘러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희정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희정이 내 전화도 안 받던데? 어디 여행이라도 간 거 아냐?”


우진이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카톡은 볼 거 아냐. 카톡도 안 보던데?”

“그럼 한 번 집에 찾아가 봐. 걔 숙대 입구에 살지 않냐? 저번에 데려다준 적 있잖아.”

“서대문으로 이사 갔어. 어딘지는 아니까 한번 가봐야겠다.”


그러나 희정이를 당장 찾아갈 수는 없었다. 출근해서 일하다가 술 한잔하고 퇴근하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다가 내가 쉬는 수요일이 되어서야 희정이를 찾아가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희정이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로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려다가 그러면 희정이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보내지 않았다. 희정이는 내 전화뿐만 아니라 우진이의 전화나 다른 사람들의 전화도 안 받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려면 희정이를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희정이는 보통 6시에 퇴근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5시부터 서대문역에서 경기대학교로 가는 길에 있는 희정이의 집 앞 골목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희정이는 왜 연락이 안 되는 것일까? 핸드폰이 고장 났나? 아니면 다쳐서 병원에 입원이라도 한 것일까? 사실 진작부터 의심되는 생각이 있었지만, 절대 아닐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 말고는 다른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다. 틀림없이 고양이가 이유일 것이다. 괜히 희정이에게 고양이를 맡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정이가 고양이를 맡아준다고 했을 때 무언가 미덥지 못했었다. 고양이를 만지기조차 무서워하는 듯 보였는데 괜히 떠맡긴 것은 아닐까? 그래도 희정이가 잘못된 것보다 고양이가 도망친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내 고양이도 아니었다. 아마 고양이가 도망치고 희정이는 그 죄책감에 내 전화를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우진이나 다른 사람들 전화까지 피하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희정이 성격상 그러고도 남을 아이였다. 그런데 나중에라도 고양이 원래 주인이 전단을 보고 전화를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화가 없는 걸 보면 주인이 고양이를 일부러 버렸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희정이를 위로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짜증이 났다. 이번에도 내 고양이를 잃어버린 것인데 내가 위로를 해 줘야 한다니.


“아아아악!”


희정이는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나를 보자 귀신을 본 것처럼 까무러치며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늘 그렇듯 울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연락을 안 받아?”

“오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나는 한숨이 나왔다. 희정이는 착하고 외모도 나쁘지 않지만, 이게 희정이와 사귀기 꺼려지는 이유였다. 나는 희정이를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희정이의 핸드백과 장을 봐온 장바구니도 챙겨서 들어주었다. 장바구니에 들어있던 우유가 다 터져서 새고 있었다. 아스팔트에 우유가 하얗게 퍼져나갔다. 나는 장바구니에서 우유 팩을 꺼냈다.


“휴지나 물티슈 같은 거 있어?”


희정이는 핸드백에서 물티슈를 꺼내 주었다. 나는 물티슈를 뽑아 장바구니 안을 닦기 위해 장바구니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밖으로 꺼냈다. 양파 한 개, 즉석 카레 한 개, 햇반 세 개, 스타킹 하나, 고양이 간식 통조림이 네 개가 들어있었다. 고양이 간식 통조림이 있다는 얘기는 고양이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실 희정이가 바로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혹시 고양이가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다행히도 둘 다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희정이는 내 연락을 피한 것일까? 나는 궁금증을 뒤로한 채 우선 물티슈로 장바구니를 전부 닦은 뒤 장바구니에서 꺼내 놓았던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다시 담아 주었다. 그럴 때도 희정이는 내 눈치를 보며 울고 있었다.


“고양이는?”


나의 물음에 희정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묻잖아. 고양이는?”

“집에 있어요.”

“고양이한테 무슨 일 있어?”

“아뇨. 없어요.”


나는 희정이와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희정이가 왜 연락을 피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냥 고양이만 데리고 얼른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럼 들어가서 고양이 데리고 나와.”

“오빠. 제발.”


희정이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희정이를 일으켰다.


“뭐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의 물음에 희정이는 갑자기 미친 듯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빠. 그냥 고양이 나 줘요. 나 오빠한테 고양이 못 주겠어요. 오빠가 일주일만 데리고 있으라고 그래놓고 인제 와서 연락하는 게 어디 있어요? 아니에요. 미안해요. 오빠 잘못 아니에요. 그런데 진짜 우리 고양이 저 주시면 안 돼요? 진짜 그냥 저 주세요. 오빠가 시키는 거 다 할게요. 저 그 고양이 없으면 안 돼요. 제가 인터넷 찾아보니까 그 고양이 한 오십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던데. 그냥 저한테 팔아요. 오빠도 그냥 주운 고양이니까 제가 한 삼십만 원 정도 드릴게요. 그냥 그렇게 해요. 저 진짜 고양이 없으면 안 돼요. 그냥 저 주세요. 제발요.”

“그게 내 고양이가 아니잖아. 주인한테 연락 오면 어떡해?”

“그럼, 제가 그때 드릴게요. 아니에요. 미안해요. 저 못 줘요. 그냥 주인한테 전화 오면 고양이가 도망갔다고 해주세요. 어차피 그 주인도 자기가 간수 못 한 탓도 있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전화 없었죠? 그러면 그 주인도 포기한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고양이 제가 키우게 해주세요. 제발요. 오빠. 안 그러면 저 진짜 죽어요. 저 고양이 없으면 죽을 거 같아요.”


희정이는 다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보고 창문 열고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른 일어나. 그래. 그냥 고양이 네가 키워. 내가 고양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그렇게 좋아한다면 그냥 네가 키우는 게 낫겠다.”


내 말을 들은 희정이는 깜짝 놀라 커다래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나는 희정이가 조금 무서워졌다.


“오빠. 진짜 그렇게 하기로 한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진짜 너무 고마워요. 제가 정말 잘 키울게요. 진짜예요. 오빠 정말 잘 생각하신 거예요.”

“그럼 온 김에 고양이 한 번 보고 갈게.”

“안 돼요!”


나는 깜짝 놀라 희정이를 쳐다보았다. 나는 희정이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마치 아기를 잃어버린 엄마의 표정 같았다. 반쯤 미친 것 같은 희정이의 눈을 보자 모골이 송연했다.


“오빠. 미안하지만 고양이는 보여줄 수 없어요. 오빠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만약 오빠가 고양이를 보고 마음이 바뀌면 어떡해요? 아시다시피 우리 구름이가 너무 이쁘잖아요. 오빠도 이제 미련 없게 안 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오늘은 가세요. 제가 나중에 사진으로 보여드릴게요. 아셨죠?”


나는 고양이를 데리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희정이가 이십만 원을 입금했다는 은행 앱 알람이 떴다. 나는 우진이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진이는 그 이야기를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


“걔 아주 미친년 아니야? 그래서 고양이를 주기로 했다고? 너도 미친놈이다. 그걸 왜 그냥 줘? 경찰에 신고한다고 그러지. 그 고양이 한 백만 원은 한다니까. 희정이 걔가 너 백만 원 빼앗아 간 거나 다름없는 거야. 이게 무슨 경우냐? 참나. 집 앞까지 갔는데 고양이를 보여주지도 않았다고? 혹시 그 고양이 죽은 거 아냐? 희정이 걔 쇼하는 걸 수도 있잖아. 고양이가 있나 없나 확인해 봤어?”


나는 우진이의 잔소리도 듣기 싫어져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잠시 창밖을 보다가 희정이에게 카톡으로 고양이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도 고양이 사진은 도착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희정이에게 전화했더니 전화기를 꺼 놨다는 기계음만 들렸다. 오늘 이후로 다시는 희정이를 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집에 들어오니 하얀 무언가가 방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저게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희정이네 갈 때까지만 해도 저런 게 없었는데?


그러니까 다시 말해 나는 저것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