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학년 교실에서
다시 1학년 교실에서
1학년 수업, 지난 월요일에 이어 두 번째 시간이다. 첫 시간에는 자음과 모음을 만드는 원리를 중심으로 수업을 했다. 10시 30분, 새로 제본한 교재, 『서울대 한국어』를 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책을 나누어주고 교재의 전체 구성과 수업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에서 돌아온 코워커 보파 선생님이 같이 교실에 들어갔다.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보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통역을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미리 이야기한 것은 “모국어가 아닌 낯선 언어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내가 한글로 칠판에 적고 보파 선생님에게 크메르어로 적어달라고 했다.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할 때 가급적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강제적인 것은 아니고, 발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는 전제를 달았다. 몇몇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었지만 그래도 마스크를 벗지 않은 학생 두어 명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 대해 더 말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어서 말하기와 듣기를 우선적으로 하고 읽기와 쓰기를 순차적으로 할 것이라 했다. 물론 동시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수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하기와 듣기를 강조하기 위해 ‘말하기, 듣기→읽기, 쓰기’라고 칠판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책에 자주 나오는 말, 수업 시간에 자주 쓰는 단어들, 가령 ‘자음, 모음, 음절, 쪽……’과 같은 단어들은 말하고 듣고 읽고 쓸 수 있도록 미리 익혀 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숫자에 관한 공부를 먼저 하겠다고 했다 덧붙여 수업 장면을 녹화할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데 허락해 주겠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흔쾌히 동의한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고마워 내가 찍은 사진이나 영상은 수업을 하는데 필요해서 찍는 것이고 SNS 상에 떠도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고 또 아이들은 시원하게 웃었다.
이런 이야기하면서 보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시원했다. 혼자였으면 이러한 내 생각들을 어떻게 전할 수 있었을까. 번역기를 동원한다고 해도 시원하게 전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새삼 영어 공부와 크메르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나도 현지인의 도움 없이 이렇게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 읽은 조명희의 소설 ‘몌별’이 다시 떠오른다. 몌별이라는 말은 ‘소매를 붙잡고 차마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설 몌별은 대만에서 유학을 온 ‘그’와 그를 사랑하는 ‘그녀’ 사이에 가로막힌 언어 장벽, 이로 인해 소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시적인 문장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다시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지난 신입생 환영회 때 했던 자기소개를 한 번 더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당시 한국에 가 있어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보파 선생님에게 신입생을 소개해 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발음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신입생 환영회 때 나는 많이 놀랐다. 당시에 재학생들은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1학년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 크메르어로 자기소개를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뜻밖에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입학한 지 두 주일, 아무리 선생님들이 지도를 했다지만 분명한 발음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모습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그 목소리을 다시 들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먼저 내가 한국어로 소개하면 이어서 학생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마지막으로 보파 선생님이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도록 했다. 나는 한국어로 나 자신을 먼저 소개했다. 통역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내 모습일 테니까. 그리고 내가 소개하는 내용 대부분은 첫 시간에 했던 것이기도 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학생 여러분! 제 이름은 장재화입니다. 저는 코이카 봉사단원의 한 사람으로 캄보디아에 왔습니다. 지난 2023년 12월 28일 프놈펜에 도착하여 5주일 간 교육을 받고 2월 1일 이곳 바탐방으로 왔습니다. 저는 여기서 일 년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크메르어를 익숙하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수업할 때 많이 도와주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으로 아이들이 번호순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했는데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잘한다는 소리를 연이어 했다. 마지막으로 보파 선생님이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는데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발표가 다 끝나고 난 뒤 아이들을 칭찬해 주고, 나와 보파 선생님 소개하는 것이 별 차이가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보파 선생님이 잘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렇게 물었는데 아이들로부터 차이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손가락을 조금 내 보이며 요만큼? 하고 물으니 아이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분들도 여기에서 공부를 하면 보파 선생님만큼, 아니 보파 선생님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며 자기소개 시간을 마무리했다.
보파 선생님을 계속 잡아둘 수 없어 사무실로 돌아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안 그래도 한국 갔다 와서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하면서 교실에서 나갔다. 이후 다시 답답한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지난 시간에 배운 자음과 모음에 대한 것을 복습하고 이어서 숫자 공부를 했다. 교재 중간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숫자와 관련된 것들은 일상에서 늘 사용되는 것이기에 미리 당겨서 한 것이다. 먼저 영을 포함하여 1부터 10까지 칠판에 적고 그것을 같이 읽어보았다. 이어서 20이 되는 원리와 21부터 29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을 하면서 칠판에 적고 같이 읽었다. 30, 40……100, 1000, 10,000, 100,000, 1,000,000, 10,000,000까지 아이들이 원리에 따라 만들어내도록 해 보았다. 아이들은 참 똑똑했다. 금방 원리를 발견해 내고 내가 제시한 숫자를 읽어냈다. 그래서 내가 10,000,001을 읽어보게 했더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아이들 몇 명이 읽어냈다. 참 기특한 아이들이다. 내가 먼저 숫자를 읽으면 아이들이 따라 읽도록 하면서 나는 계속 아이들의 입모양을 바라보았다. 숫자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소리를 정확하게 내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는 더 중요한 일이니까. 특히 3으로 시작되는 숫자를 읽을 때 아이들의 소리는 대개 경음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삼십이 아니라 쌈씹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아마 크메르어의 발음 탓이리라. 남은 시간 아이들더러 숫자를 한글로 적어보게 했는데 몇몇 아이들은 아직 자음을 쓰는 순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ㅂ’이나 ‘ㅁ’을 쓸 때 더 그러했다. 그들의 공책에 그 글자들을 적어가면서 교정을 해 주었다. 처음 배울 때 정확하게 배우는 것이 좋으니까. 내가 크메르어를 배울 때 자음과 모음을 제대로 적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수업을 마치고 한국어학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모두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내가 바탐방대학에 온 것과, 보파 선생님이 무사히 한국에 다녀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그리고 지난 주 있었던 신입행 환영회 평가 반성회 자리이기도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와우 카페’라고, 선교사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한국 음식도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 나와 보파선생님은 라면과 밥, 그리고 김치를 주문하고 다른 두 사람은 김치찌개를 시켰다. 라면은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는데 밥은 많이 달랐다. 국물에 말아도 딱딱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설 익혀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가끔 이용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난 뒤 다 같이 학교로 돌아왔다. 교육과정에 따라 각자 맡을 2학기 수업을 정하고 시간표를 짜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1학년 수업과 함께 2학년 1과목, 3학년 두 과목을 맡게 되었다. 전체 네 과목 12학점이니 1주일에 12시간 수업을 하게 된다. 그래도 교실에 들어가는 것은 1주일에 여덟 번, 한 번 들어가면 90분 수업을 해야 하니 전체적으로 12시간이 되었다.
시간표를 짰다. 각자 원하는 시간을 적어내게 하고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 학교는 대학교지만 아이들이 따로 수강신청을 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처럼 학교에서 시간표를 짜면 아이들은 그 시간에 수업을 들어야 한다. 1학년 컴퓨터 시간을 제외하고는 교양 과목이라든지 전공 선택이라든지 이런 개념이 없다. 전공은 모두 전공필수 과목이기에 모든 학생들이 다 같이 들어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들어가는 과목을 요일별로 나눠서 적어냈는데 그렇게 하니 수요일에는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3학년 과목인 ‘Intermediate KoreanⅡ’ 세 시간, 화요일에는 2학년 과목인 ‘Korean Reading Ⅰ’ 세 시간, 목요일에는 3학년 과목인 ‘Korean Past & Present’ 세 시간, 금요일에는 1학년 과목인 ‘Korean Practices’ 세 시간, 이렇게 시간표가 구성되었다. 이 시간표는 2, 3, 4학년이 2학기를 시작하는 3월 11일부터 시행된다.
커리큘럼 상의 과목명을 모두 영어로 표기한 것은 이것이 학교에 보고되는 정규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크메르어와 같이 표기를 해서 보고를 하는데 영어로 과목명을 적은 것은 한국어학과에서 일하는 우리를 배려한 측면도 있다. 동시에 학교를 배려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학교 관계자가 모르고 또 한국인 교수요원도 크메르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영어와 크메르어로 커리큘럼을 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