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바탐방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5

처음으로 현지인 교수 도움 없이 1학년 수업을 하다

by 지천

처음으로 현지인 교수 도움 없이 1학년 수업을 하다

처음으로 현지인 선생님의 도움 없이 90분 수업을 했다. 1학년 아이들과 하는 한국어 세 번째 시간이다. 첫 시간은 뽄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시작했고, 두 번째 시간에는 보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수업과 관련된 이야기, 자기소개 등을 했다.

이제 세 번째 시간, 먼저 수업할 곳의 쪽 번호를 칠판에 적고 읽어보게 했다. 두 자릿수의 숫자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제대로 읽었다. 이어서 세 자릿수, 네 자릿수, 다섯 자릿수 이렇게 확장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읽어보도록 했더니 아이들은 더듬거리면서도 대부분 다 읽어냈다. 그런 다음 맨 먼저 적은 숫자 뒤에 ‘쪽’이라는 말을 쓰고 교재에서 그 부분을 펴도록 했다. 교재 29쪽 한글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먼저 음절 구조에 대해 설명을 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서 이미 배운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국어의 음절을 익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면서 중요한 것이라 다시 설명을 한 것이다. 모음 단독으로 이루어진 음절, 자음과 모음이 결합해서 이루어지는 음절, 모음과 자음이 결합해서 이루어지는 음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음과 모음, 그리고 다시 자음이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음절을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했다. 두 번째는 자음과 모음이 결합을 할 때 각각의 위치에 대한 설명을 했다. 모음의 왼쪽에 자음을 써야 하는 음절, 모음의 위에 자음을 써야 하는 음절 등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음절의 첫소리에 나오는 ‘ㅇ’, 음가가 없는 형식 자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말이 첫소리와 가운뎃소리, 그리고 끝소리가 결합을 해야 제대로 된 음절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으로 받침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했다. 받침에 대한 것은 뒤에 다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어를 익힐 때 좀더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넘어간 것이다. 이어서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는 방식과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들을 공부했다. 교재에는 가로축으로 모음을, 세로축으로 자음을 적어놓고 이들을 결합하면 어떤 음절이 만들어지는지 직접 적어보도록 하고 있는데 나는 아이들이 교재에 적는 것을 둘러보면서 획순이 잘못된 것을 그 자리에서 학생의 교재에 적어가면서 교정을 해 주었다. 아이들이 획순을 잘못 적는 자음은 대개 ‘ㄹ, ㅁ, ㅇ, ㅎ’ 같은 것이었고 모음은 ‘ㅛ, ㅠ’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음절을 만드는 연습을 한 뒤 그렇게 만들어진 음절로 구성된 단어들을 공부했는데 교재에 제시된 단어를 내가 먼저 읽고 난 뒤 아이들더러 따라 읽도록 했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를 썼다. 계속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지목해서 제시된 단어 전체를 읽도록 하면서 잘못된 발음, 어색한 발음을 교정해 주었다. 이렇게 읽기를 연습한 뒤 이번에는 첫 번째 학생이 한국어로 제시된 단어를 읽고 옆에 앉은 학생이 그것을 크메르어로 말하도록 했다. 한국어와 크메르어를 연결하여 읽음으로써 한국어 단어의 뜻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니 90분이 금방 흘러갔다. 아이들이 집중을 해서 그런지 더듬거리는 영어나 단편적인 크메르어 단어로 발문을 던져도 아이들은 곧잘 알아듣고 따라왔다. 덩달아 나도 힘을 낼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면서 나는 번역기를 돌려서 ‘정확하게 읽고 정확하게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과 ‘여러분들이 빨리 한국어를 익혀서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가능하지 않다는 듯 웃었지만 거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나 역시 부드럽게 웃으며 수업을 마쳤다. 현지인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수업, 부족했지만 나름 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기분 좋게 다음 시간을 기대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내가 잘 가는 카페에 갔다. 카페는 제법 큰 연못가에 있는데 연못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있고 아래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정도 음료수 한 잔 사서 벤치에 앉아 연못과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의 휴식을 즐기곤 했다. 카페에 가니 조금 전에 같이 수업을 한 아이들 몇 명이 카페 앞 벤치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층안(맛있어요)?’이라고 말하니 아이들이 ‘층안’이라고 대답했다. 신입생 중 유일한 남자인 모세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기에 ‘모세, 층안?’이라고 다시 물으니 환하게 웃으며 ‘층안’이라고 했다. 내가 한국어로 ‘맛있어요?’ 하고 물으니 아이들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쯘렝이 내게 여기 무엇하러 왔냐고 영어로 묻기에, 커피 마시러 왔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다른 아이들 역시 따라 웃었는데 나는 아직 모세와 쯘렝의 이름만 알 뿐이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잘 외워지지 않는 이름들이고 내 머리 역시 굳어 있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어쨌든 빨리 이름을 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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