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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일년, 순수에 물든 시간

글을 시작하며

by 지천

글을 시작하며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을 한 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나가고 있다. 나는 2024년 12월 27일까지 캄보디아에 있었으며 이후 귀로여행으로 인근 국가인 태국과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을 다녀왔다. 그리고 1월 17일 귀국을 했다. 귀국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설 명절을 지냈고 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은 바쁘게 지냈다.

한국에 돌아와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이 묻는 말은 한결같다. 더운 나라에 가서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건강은 괜찮은가요? 캄보디아에서 재미있게 지내셨습니까? 그러면 나 역시 한결같이 대답했다. 더워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잘 지내다 왔습니다, 캄보디아 아이들 순수하고 정이 많아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이 대답은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아이들을 만나면서 늘 생각했던 것이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나왔다.

며칠 전 국립바탐방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했는데 나는 그 소식을 텔레그램 단톡방에서 보았다. 3학년 리응과 4학년 뗍 뽀레이가 사회를 보는 모습이 보였고,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도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신입생들의 입학을 축하하기 위한 춤 공연도 빠지지 않았다. 낯선 신입생의 얼굴도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반가운 얼굴도 그 속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떠난 후 남아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권선생님, 오선생님, 코워커, 학부장의 모습 역시 내 시선을 자꾸 그곳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지난 1년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2023년 12월 28일 코이카 일반봉사단 160기로 캄보디아에 갔다. 수도 프놈펜에서 5주 간 현지적응교육을 받고 2월 1일 바탐방으로 갔으며 이후 국립바탐방대학교에서 임기를 마칠 때까지 한국어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 사이에 나는 42도가 넘는 더위와 씨름을 하면서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또 학교가 물에 잠겨 바지를 둥둥 걷고 사무실로 들어가기도 했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과 웃음을 나누기도 했고 또 그들의 장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가끔은 같이 소풍을 가기도 했고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 말하기 대회나 쓰기 대회, 그리고 토픽 시험을 위해 따로 만나 더운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했다. 한국어학과의 날 행사를 앞두고는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풍물을 가르치고 또 짧게나마 공연을 했으며 아주 드물게 그들과 맥주를 마시며 같이 황홀한 저녁노을을 보기도 했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바탐방 지역을 혼자서, 혹은 바탐방을 방문한 사람들과 같이 두루 돌아다니기도 했고 더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시엠립이나 프놈펜, 캄폿, 시아누크빌, 몬둘끼리 등지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바탐방대학교에 처음 간 2월 초에는 한동안 1학년 수업만 했다. 2, 3, 4학년들은 이미 선배 단원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고, 또 그들은 2월 중으로 학기가 끝나기 때문에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수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3월, 새학기가 시작하면서 나는 1학년과 2학년, 그리고 3학년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이들과 한 학기를 지낸 후 10월 새 학년도가 시작되면서 나는 2학년과 3학년 4학년 수업을 했다. 그 때가 임기 두 달 정도 남은 시점이라 중간고사를 칠 때까지만 수업을 하고 남은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1년이 힘들면 몇 달 만이라도, 이 아이들 학기를 마칠 때까지 3개월만이라도 연장을 해 볼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내 주변의 사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 결국 학기 중간에 아이들과 헤어져야 했다.

앞으로 쓰고자 하는 글은 내가 캄보디아에서 일 년 동안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들에 대한 것이다. 당시 나는 일기 형식으로나마 캄보디아 생활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것이 더운 나라에서 시간을 보내는 내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기록들을 들춰가며 다시 정리를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주제별로 나누어서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 수업과 각종 행사, 캄보디아에서 보낸 일상 그리고 소풍으로 나누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더운 캄보디아에서 보낸 일 년의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한 많은 사람들을 더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글이 캄보디아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보낸 시간 속에 캄보디아의 단편적인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봉사활동의 의미 역시 조금씩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그 정도라도 정리가 된다면 나는 내 일 년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기억할 것이며 아울러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더 오래 붙들어둘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글을 정리하는 지금 나는 다시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그들의 얼굴을 그린다. 그러면 그들이 내게 보낸 선한 웃음 역시 이름과 함께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진하게 느낀다. 캄보디아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읽어보았던 중용(中庸)의 한 구절을 다시 떠올려 본다. 나는 이것이 퇴임 이전과 이후, 캄보디아 생활 이전과 이후로 죽 이어지면서 다시 내게 힘을 주리라 믿고 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있는 이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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