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캄보디아 문화와 역사1_왕궁과 왓프놈
아직도 캄보디아를 공산국가로 기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내가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고 했을 때 들은 말이 “그 나라 위험하지 않아요?” 하는 물음이었다. 킬링필드로 상징화된 폴폿 정권의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캄보디아의 정식 명칭은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이고 정치체제로 보면 입헌군주국이다. 왕이 있고 총리가 있으며 의회도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캄보디아 사람들의 약 95% 정도가 불교를 믿는 불교국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캄보디아라는 나라를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로 기억한다. 앙코르와트는 시엠립 지역에 있고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있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한국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진 지금은 뜸해졌지만 많은 한국인이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를 다녀갔다. 그리고 그들은 캄보디아 곳곳에 산재한 킬링필드의 흔적을 찾았다. 마을 숫자만큼이나 많은 사원 역시 주요 탐방지였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캄보디아로 배정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였으며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수도 프놈펜에 있는 왕궁과 왓프놈이라는 절이었다. 폴폿 정권의 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청아익 학살센터와 뚜얼슬랭은 몇 번씩 가 봤으며 앙코르와트 역시 두 번 다녀왔다. 바탐방에서 살 때 자주 갔던 곳 역시 킬링필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가 캄보디아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앙코르와트 이전에도 캄보디아는 존재했었고 그 당시의 유물 역시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내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이들 삶의 흔적 역시 곳곳에, 그리고 많은 사람의 삶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온전하게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일 년을 살았다지만 나 역시 이방인의 눈으로 그들 삶의 흔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교와 그로부터 비롯된 유물들, 그리고 킬링필드로 상징되는 아픔에 대해 알고 싶었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왕궁, 왓프놈 나들이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한 뒤 맞이하는 첫 주말이다. 다음 주부터는 현지어 튜터와 만나서 현지어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이 온전하게 쉴 수 있는 주말이기도 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왕궁에 다녀왔다. 어제 다른 단원 두 명과 다녀왔는데 그때 같이 가지 못한 단원이 있어 함께 간 것이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왕궁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한 번 더 가고 싶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걸어서 왕궁으로 갔다. 호텔에서 왕궁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한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왕궁이 나오기 때문에 찾아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그 길이 큰 길이 아니어서인지 도로 사정은 좋지 않았다. 군데군데 물이 고인 곳도 있었고 인도도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조금 불편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길거리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뚜껑이 없는 통에 담겨 있어서 그런지 특유의 냄새도 많이 났다. 그렇다고 그 냄새가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냄새 역시 이들 삶의 한 부분일 테니까.
왕궁은 톤레삽 강가에 있다.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메콩강과 합류를 하는 지점이 나타나는데 그곳은 강폭이 무척이나 넓다. 강을 끼고 차량이 달리는 도로가 있고 도로에 면해 큰 공원이 있다. 바로 왕궁 앞에 있는 넓은 공원이다. 그곳에는 가족 단위로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먹을 것을 비롯해서 장난감을 파는 상인들이 많이 있었다. 사람만큼이나 비둘기가 많았는데 이는 세계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왕궁에 도착해서 입구를 찾아가는데, 툭툭 운전기사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시티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뭔 말인지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대략 호객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믄 아이 떼(괜찮아요)’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왕궁의 담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어 매표소가 있는 입구에 들어가 10불을 주고 표를 끊었다. 잠시 기다리면서 보니 출입을 제한하는 옷차림에 대해 그림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안내판에는 소매가 없는 옷이나 반바지 같은 옷을 입으면 입장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궁전 앞 정원은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으며 모든 건물 역시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의 용도를 비롯하여 건물 주변에 늘어서 있는 시설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또 안내해 주는 사람들도 없었기에, 그냥 사진만 찍으며 계속 탐방을 하였다. 경복궁 근정전처럼 어전 회의를 하는 곳도 있었고, 긴 회랑을 따라 벽화를 그려놓은 곳도 있었다. 벽화의 내용은 대부분 전쟁과 관련된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또 왕국을 확장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졌을 테니 벽화 역시 그러한 전쟁을 주제로 그렸을 것이다. 사리탑을 빙 돌아가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중간에 작은 불상이 있었고 그 옆에는 왕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불상 앞에서 삼배를 하면서 캄보디아 생활이 무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었다. 절을 마치고 500리엘을 상 위에 얹어놓으니, 그곳에 계신 한 분이 붓처럼 생긴 도구에 물을 적셔 손바닥에 떨어뜨리면서 머리에 적시라는 시늉을 한다. 스님이 시키는대로 한 뒤 앉아서 잠시 불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 다음에 온 젊은 남녀가 역시 그 분에게 받은 물로 자신들의 머리를 적시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두 사람은 점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물을 적셔 준 그 분, 왕궁에는 승려가 없다 하니 승려는 아닌 듯한 그 사람이 두꺼운 책을 두 사람에게 주고 원하는 곳에 갈피를 꽂으라는 몸짓을 했다. 그런 다음 갈피가 꽂힌 책을 받아 그 부분을 펴 놓고 이야기를 해 주는 모습을 보니 그 부분에 적힌 내용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한참 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 몇 군데 더 둘러보고 왕궁에서 나왔다.
왕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왓 프놈’ 사원이 있다. 캄보디아어 ‘왓’은 ‘사원’ ‘프놈’은 ‘언덕 혹은 산’을 뜻하니 ‘왓프놈’은 ‘언덕 위에 있는 사원’이라는 뜻이 된다. 프놈펜에서는 제법 유명한 사원이다. 규모가 크다거나 건물이 화려해서가 아니다. 이 사원에는 ‘펜’이라는 할머니 동상을 부처님과 같이 모시고 있는데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이 지역에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이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 펜이라는 여인이 물에 떠내려오는 불상 네 기를 언덕 위로 옮기고 거기에 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펜 할머니 동상을 절 안에 모시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프놈펜이란 지명 역시 펜 할머니와 관련이 있다. 언덕이라는 ‘프놈’과 여인의 이름 ‘펜’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지명이 ‘프놈펜’이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달러를 내야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지만 외국인에게만 1달러씩 받는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입장료를 받는 대부분의 절에서는 그렇게 한다. 심지어 앙코르와트에 들어갈 때 외국인에게는 하루 이용권으로 37달러를 받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무료로 입장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부처에게 공양을 하기 위해 절을 찾지만 이방인에 불과한 외국인들은 공양이 목적이 아니라 관광이 목적이기에 입장료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면서 먼저 사자상으로 시작하는 계단을 만났다. 언덕 자체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계단 역시 가파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볍게 계단을 올라서면 우선 황금불상이 있는 법당이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지는 엄청난 인파가 절 입구에 있어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신 절 주변을 부옇게 만드는 향초 연기만 실컷 마셨다. 그 옆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다른 법당이 있고 옆에는 펜 할머니 동상이 있는데 그곳에도 사람들이 과일을 비롯하여 공양물을 바치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절 주변, 언덕을 빙 돌아가면서 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운동을 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제기차기다. 이곳의 제기차기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그냥 한 발 혹은 양발로 제기를 위로 차 올리면서 숫자를 헤아리지만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큰 원을 그리고 제기를 차서 맞은 편 사람에게 보낸다. 사람들은 대개 발 안쪽이 아니라 발 뒷굼치로 제기를 차서 상대방에게 보내는데 그 제기는 탄력이 좋아서인지 꽤나 멀리 날아간다. 그리고 제기차기는 주로 남자들이 하지만 가끔은 여자들도 남자들과 같이 어울리기도 한다. 절 주변으로는 큰 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밑에는 벤치가 놓여 있어 이곳이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가지고 온 음식을 풀어놓고 같이 먹기도 한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소풍을 나온 듯했다.
프놈펜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찾은 왕궁과 사원, 낯선 문물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즐거움을 새로운 호기심으로 연결된다. 바로 이러한 문물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걸어온 시간의 역사 역시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일 년의 시간 속에서 나는 이들을 만나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