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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 3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by 지천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프놈펜에서 현지적응교육을 받을 때 우리는 아침을 호텔에서 먹고 점심은 주로 학교 안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교육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각자 저녁을 알아서 먹는다. 그날도 나는 동기 한 명과 저녁을 먹으러 왕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호텔을 나와 큰길을 건너 얼마를 걸었을까, 동기 한 명이 한 곳을 가리키면서 그곳에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많이 익은 사람이라고 했다. 분명 캄보디아인일 텐데 하면서 다시 보니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의 남자 주인공, 즉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였다. 가까이 다가가 당신은 배우가 아니냐고 물으니 맞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영화를 봤다는 말과 함께 당신이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같은데 맞냐고 했더니, 그 남자는 깜짝 놀라 피우던 담배를 황급히 끄면서 맞다고 했다. 그 사람과 한참을 이야기했다. 킬링필드, 폴폿 시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 요즘 그 사람의 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은 배우지만 요즈음은 영화를 별로 찍지 않아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해 근처 학원에서 일한다는 것이 그 사람이 주로 한 이야기였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라 생각하면서 그 사람과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의 남자 주인공과 함께>

캄보디아에 오기 전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또 한 편의 영화를 봤다. 캄보디아를 알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더 빨리 다가가고 싶었다. 도서출판 「평화를 품은 책」에서 만든 책의 제목은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이다. 이 책은 로웅 웅이라는 작가가 쓴 회고록이다. 로웅 웅이 다섯 살 때부터 8살이 될 때까지 자신과 가족이 겪은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로웅 웅이 쓴 회고록의 원 제목 <First They Killed My Father>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제목만이 아니라 영화의 내용 역시 책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로웅 웅의 회고록 내용을 따라가면서 당시의 시간을 만나보기로 했다.


1975년 4월, 프놈펜, 아침 여섯 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프놈펜의 삶은 평화로웠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아침 여섯 시부터 먼지투성이의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부딪치며 달린다. 검고 흰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이 가게 문을 활짝 열자, 국수장국 냄새가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노점상들은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만두며 훈제 소고기 꼬치구이며 구운 땅콩을 가득 실은 포장마차를 인도로 밀고 와서 그날의 장사를 시작한다. 인도에서는 색깔이 화려한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아이들이 포장마차 주인들의 불평과 고함소리를 무시하고 맨발로 공을 차고 있다. 넓은 대로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삐걱대는 자전거 소리, 여유 있는 부자들의 소형차 소리로 윙윙거린다.

정오쯤 기온이 38도에 달할 때에야 거리는 다시 조용해진다. 오후 2시에 일터로 다시 돌아오기 전, 사람들이 열기를 피해 점심을 먹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러 집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13쪽)>


하지만 이러한 평화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론놀 정부를 몰아낸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에 입성을 하면서 여지없이 깨진다. 그들은 미국의 폭격이 임박했다는 말과 함께 사흘 동안 프놈펜을 비워야 한다며 프놈펜 시민을 밖으로 몰아내기 시작한다. 프놈펜 시민이었던, 론놀 정부에서 일하던 웅의 아버지 역시 프놈펜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이들 가족은 모두 아홉 명이다. 웅의 아버지는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 봤을까?


<나는 아빠 무릎에 올라가며 묻는다.

“아빠, 저 사람들이 누군데 사람들이 저렇게 좋아해요?”

“군인들인데 전쟁이 끝나서 사람들이 환호하는 거야.”

아빠가 조용히 대답한다.

“저 사람들은 뭘 원하는 거예요?”

“우리를 원해.”

“왜요?”

“저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저 사람들 신발을 봐라. 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샌들을 신고 있잖니.”

다섯 살인 나는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빠가 훌륭하고 옳다는 건 분명히 안다. 신발만 보고도 군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건 아빠가 지식이 대단하다는 증표다.

“아빠, 신발이 왜요? 왜 저 사람들이 나빠요?”

“저 사람들이 파괴자들이라는 걸 보여주거든.”

나는 아빠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그저 언젠가 아빠의 반만이라도 똑똑해지길 바란다.(40-41쪽)>

웅의 가족은 트럭을 타고 프놈펜을 떠난다. 하지만 트럭에 기름이 떨어지고 근처에 주유소도 없어 그들은 트럭을 버리고 걸어간다. 고난의 시작이다.


<오늘은 우리가 길을 나선 지 사흘째 되는 날로, 내 발걸음은 살짝 튀는 듯 활기에 찬다. 프놈펜에서 군인들은 우리에게 사흘 후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미군이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릴 것이니 떠나라고 했다. 하지만 하늘에는 비행기 한 대 보이지 않고 폭탄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사흘 후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우리를 떠나게 한 게 이상하다. 사흘 내내 걷다가 사흘째 날이 저물면 곧바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까만 개미 떼처럼 행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어리석어 보여서 웃음이 난다. 이해되지 않지만 나는 그들이 도시를 청소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사흘일 거라고 추측한다.(58쪽)>


사흘이 나흘이 되고 나흘이 닷새가 되어도 웅의 가족은 따가운 햇살 아래 걸을 수밖에 없다. 7일째 되는 날, 웅의 가족은 웅의 외삼촌, 엄마의 오빠를 만나게 된다. 프놈펜 소식을 듣고 찾으러 나왔다 한다. 같이 외삼촌 집으로 가서 당분간 거기에서 생활하게 된 웅의 아버지는 웅의 오빠들에게 캄보디아 정치사를 이야기해 준다. 아빠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아빠는 오빠들에게 캄보디아 정치사를 이해시키려고 애 쓴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캄보디아는 1953년 시아누크 왕자에 의해 독립국가가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캄보디아는 번성했고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시아누크 정부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아누크 정부를 이기적이고 부패한 정부로 여겼으며, 그런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온갖 국수주의적 당파들이 생겨나며 개혁을 요구했다. 그 무리 중 하나인 비밀 공산당 크메르루즈가 캄보디아 정부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벌였다.

미국이 북베트남의 근거지를 파괴하려고 베트남과 닿아 있는 캄보디아 국경에 폭탄을 떨어뜨리자 베트남 전쟁이 캄보디아까지 확산되었다. 폭탄 투하로 많은 마을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는 사이 크메르루즈는 소작농과 농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1970년 시아누크 정부는 론 놀 장군에게 전복당했다. 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 놀 정부는 부패하고 약해서 크메르루즈에 쉽게 패배했다.

아빠가 더 많은 일들을 오빠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나는 정치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바보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과, 도시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절대 말해선 안 된다는 것만 기억한다. 다른 사람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도 말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서 케아브 언니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는다. 언니가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고 빰을 어루만져 준다.(76-77쪽)>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 캄보디아의 역사에서 크메르루즈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5년 11월, 프놈펜을 떠난 지 일곱 달이 되었을 때 웅의 가족은 외삼촌 집을 떠나 로레아프로 가야만 했다. 그때 아빠는 밤마다 집회에 나가야 했는데 집회에 다녀온 뒤 웅에게 이야기를 한다.


<아빠가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집회는 매번 똑같다고 말한다. 모든 신인민이 앉아서 듣는 동안 촌장이 앙카르의 철학을 가르치고 설명한다. 앙카르가 범죄, 사기, 계략과 서구의 영향이 전혀 없는 완벽한 농경사회를 세웠다며 정부의 철학과 앙카르의 업적을 되풀이해 설교한다. 앙카르는 우리의 새 사회가 2년 안에 수천 킬로그램이나 되는 많은 양의 쌀을 생산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때 우리는 원하는 만큼 밥을 먹고 자립할 것이다. 국가는 자립을 통해서만 제 운명의 주인이 된다. 외국의 원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으며 충분히 못 먹겠지만, 우리가 열심히 쌀을 재배하면 곧 온 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거라고 한다.(116쪽)>


하지만 그것은 꿈에 불과했고 그 꿈은 캄보디아 사람에게 악몽이 되었다. 외삼촌의 집에서 잠시 안정을 찾아가던 웅의 가족 역시 악몽 속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했고 말 한마디도 가려서 해야 했다. 잘못된 말은 죽음으로 직결될 것이니까. 바교적 안정적이던 외삼촌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결국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다.

외삼촌이 사는 마을을 떠나 레아로프에서 노동과 배고픔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가족은 장녀인 케아브를 10대들의 노동수용소인 콩차랏으로 보내야만 했다. 앙카르의 명령에 따라서.


<“아빠, 그들이 우리를 죽일까요? 광장에서 다른 신인민들이 크메르루즈 군인들이 론 놀 정부에서 일한 사람들뿐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 죽인다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우린 교육을 받았으니까 우리도 죽일까요?”

질문을 하는데 심장이 거세게 뛴다. 아빠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이유로 아빠는 우리에게 바보처럼 행동하고 우리의 도시 생활은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했던 거다.

아빠는 전쟁이 오래갈 것이며, 이 때문에 살아가는 일이 슬플 거라고 생각한다. 살아남아 공포의 끝을 볼 자신이 없어서 자살하는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날마다 듣는다. 우리는 언제든 발각될 위험에 놓여 있다는 걸 알면서 살아간다. 죽음을 생각하자 구역질이 날 것처럼 속이 메스껍다. 그런 슬픔을 안고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131쪽)>


크메르루즈 군에 의해 직접적으로 살해를 당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고 강간을 비롯한 폭력의 고통을 끝내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인간은,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절망을 하고 그 절망은 스스로를 지켜낼 힘을 빼앗아 버린다. 그게 더 비극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오로지 고통뿐이라고 느낄 때 이들이 맞이하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겠는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느끼는 그들, 이게 그들의 잘못인가? 이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가족과도 떨어진 자리에서 죽에 들어있는 밥알을 세어야만 했던 것일까?


<나는 절대 한꺼번에 죽을 먹지 않는다. 행여나 우리 가족이 내 것을 덜어갈세라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먼저 국물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음미하며 떠먹는다. 그릇 바닥에 남은 세 숟가락쯤 되는 밥알을 맨 마지막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밥알을 느릿느릿 씹어 먹다가 혹 밥알이 땅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냉큼 주워 먹는다. 죽을 다 먹으면 내일까지 기다려야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릇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여덟 개밖에 남지 않은 밥알을 세면서 나는 속으로 울음을 터뜨린다. 여덟 알이 나한테 남은 전부라니! 밥알을 한꺼번에 삼켜 없애고 싶지 않아서 한 알씩 건져 천천히 씹으며 그 맛을 음미한다. 입 안에서 눈물과 밥알이 섞인다. 여덟 알을 모두 먹고 나서 아직 자기 몫의 죽을 먹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니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다.(141-142쪽)>


촌장에게 엄마의 루비 팔찌, 다이아몬드 반지와 더 많은 것을 바친 아버지는 여분의 쌀을 구해서 돌아온다. 하지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웅은 몰래 그 쌀 한 주먹을 먹고 이후 그 쌀은 웅의 가슴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다. 이후 가족의 비극적인 상황을 볼 때마다 가슴에 얹힌 쌀은 웅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1976년 8월, 장녀 케아브가 가족을 떠난 지 6개월,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잡은 지 16개월이 지났을 때 이질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가족 중 첫 희생자가 나왔다.


<그날 밤 나는 두 손을 가슴에 엇갈리게 얹고 누워서 사람들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초우 언니에게 묻는다.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그들은 처음엔 죽은 줄도 모르고 평화롭게 자고 있다고 생각해. 그들은 사흘 동안 잠을 자고 사흘째 되는 날 밤에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오려고 해. 그때 그들은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대. 슬프지만 그들은 스스로 평화를 찾아. 곧이어 강으로 가서 몸을 씻고, 환생을 기다리기 위해 하늘나라로 여행을 간대.”

“언제 환생하는데?”

“나도 몰라.”

초우 언니가 대답한다.

“언니가 여기로 환생하지 않으면 좋겠다.”(172쪽)>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일까? 아버지는 어머니더러 아이들을 내 보내서 고아수용소에서 살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 날 등에 총을 멘 군인이 아버지가 끌고 간다. 몇 킬로미터 떨어진 진흙탕에 우마차가 빠졌는데 그걸 끌어내는데 도움을 필요하다고 하면서. 긴 이별을 예감한 듯 아버지는 가족 하나하나와 안타까운 이별을 한다. 내일이면 돌아온다고 군인들이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은 남편을, 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하게 된다. 두 번째 죽음이다.


<우리는 촌장에게 아프다고 말하고 집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아침과 오후 내내, 걸어서 우리에게 돌아올 아빠를 기다린다. 밤이 오자 신들은 또다시 찬란한 일몰로 우리를 비웃는다.

“이것보다 아름다운 건 없는 듯해. 신들이 우리를 놀리나 봐. 어쩜 잔인하게도 하늘을 저렇게 아름답게 만들 수가 있어?”

나는 초우 언니에게 나직이 소곤거린다. 이 말을 내뱉자 심장이 더욱 조여온다. 내가 이렇게 아프고 비통한데 신들이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건 부당하다.

“아름다운 것들을 싹 다 부숴버리고 싶어.”

“그런 말 하지 마. 정령들이 들어.”

초우 언니가 내게 주의를 준다. 나는 언니 말에 털끝만큼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게 바로 전쟁이 우리에게 행한 짓이다. 그 때문에 지금 나는 파괴를 원한다. 내 안의 증오와 분노는 어마어마하다. 앙카르가 깊이 증오하라고 가르쳐서 지금 내가 파괴력과 살상력을 갖게 된 것이다.

곧 어둠이 땅을 덮을 텐데 아빠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다 함께 계단에 앉아서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며 눈으로 들을 살핀다.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모두 알지만, 희망이라는 환상이 깨질까봐 감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181-182쪽)>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족의 삶은 더 피폐해진다. 노동과 굶주림, 거기에 아버지의 부재에도 끝내 놓을 수 없는 희망이 겹쳐지면서다. 하지만 그 희망의 뒤에는 늘 절망이 뒤따르고 그 절망은 증오로 이어진다. 그리고 증오는 살아가는 새로운 힘이 되기도 한다. 엄마가 그러했고 웅이 그러했다. 엄마는 막내 게악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자식 모두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싫다고 해도 강요하듯 등을 떠민다. 모두가 살기 위해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엄마는 확신을 하고 있다. 아니, 확신이라기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찾은 유일한 방책이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 명이 집을 나와서 같이 걷다가 오빠 킴이 떠나고 웅과 언니 초우는 같이 어린이 노동수용소로 간다. 석 달이 지난 후 웅은 초우 언니와도 헤어져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어린이 병사 훈련소로 간다. 그곳에서 웅은 노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받는다.


<밤 공부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이제는 힘의 원천이 앙카르에서 폴 포트로 바뀐 것 같다. 왜,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멧 봉이 밤 수업 시간에 말해주는 것 말고는 폴 포트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멧 봉의 말로는 폴 포트 덕분에 크메르루주가 권력을 잡았다고 한다. 폴 포트는 캄보디아에 고대의 영광을 되돌려줄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말할 때면 멧 봉의 목소리가 높아진다.‘폴 포트’라는 이름을 말하면 그의 힘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한 이후 폴 포트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앙카르에서 그의 위치가 어떤지는 정확히 몰랐다. 이제 보니 앙카르는 그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 역시 그를 위해 일하고 있는 듯하다.

날이 갈수록 우리는 앙카르 대신에 폴 포트의 이름을 더 많이 불러댄다. 선전 보고 시간이면 이제 우리는 앙카르가 아니라 구세주이자 해방자인 폴 포트에게 감사드린다. 모든 것이 다 폴 포트 덕분이다. 어떤 병사가 강하고 숙련된 전사라면 그것은 폴 포트한테 배웠기 때문이다. 그 병사가 죽었다면 그것은 폴 포트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마다 우리는 적을 물리친 폴 포트와 그의 붉은 크메르 병사들을 찬양하고 칭송한다.(236-237)>


1978년 5월, 몸이 아픈 웅은 겨우 허가증을 받아 병원으로 향한다. 가는 길, 웅은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가족 생각에 빠져든다.


<나는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와 게악을 떠올린다. 4월과 설날이 지나서 우리 모두 한 살씩 더 먹었다. 게악은 이제 여섯 살이다. 3년전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았을 때 내 나이보다 한 살이 더 많다. 로레아프로 가서 엄마의 멍자국을 본 지도 벌써 여섯 달이 지났다. 초우 언니의 손길을 뿌리친 지도 아홉 달이 되었다. 캄 오빠와 작별 인사를 한 지는 열두 달이 지났고, 군인들이 아빠를 데려간 지는 열일곱 달이 지났고, 스물한 달 전에는 케아브 언니가…….

나는 날짜를 세다가 멈춘다.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본 때를 기억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만날 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은 이 세상에서 날짜 세기는 내가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262쪽)>


날짜 세기는 그리움의 다른 말일 터, 웅은 병원에서 극적으로 엄마를 비롯한 남은 식구들을 모두 만난다. 하지만 재회의 시간은 짧았고 다시 긴 이별이 이어진다. 여섯 달이 지나면서 베트남이 침공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노동 대신 훈련이 웅의 시간을 채운다. 그 시간 웅은 자고 일어나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며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곧장 수용소를 빠져나와 로레아프에 있는 엄마를 찾아간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엄마도 게악도 없다. 이웃의 말로는 군인이 데려갔다고 한다.


<군인들이 마을에서 사람을 데려간다는 게 어떤 뜻인지 그 아낙네도 알고 나도 안다. 한편으로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말이 사실임을 안다. 어제부터 잠에서 깨어날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육체적 통증에 시달렸다. 이제는 엄마와 게악이 나에게 군인들에 대해 알려주려고 그런 것임을 안다.

“엄마, 어딨어요? 엄마, 나한테 이러면 안 돼요!”

나는 텅 빈 집에 대고 악을 쓴다. 지난 3년 동안 케아브 언니와 아빠를 잃고서도 굶주림을 견뎌가며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잡혀가다니, 그럴 리가 없다! 지난번에 봤을 때 엄마는 아빠 없이도 잘 지내고 있었다. 잘해나가리라고 믿었다. 살기 위해서 엄마는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던가! 떠났을 리 없다. 가엾은 게악, 그 애는 좋은 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아기 울음소리에 아낙네는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기를 재운다. 프놈펜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던 엄마가 떠오른다. 더는 강하게 굴 수 없다. 벽이 무너지고 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가슴이 꽉 막히고, 창자가 나를 갉아먹고 내 정신을 먹어치우고 있다.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어쨌거나 나도 모르게 다리가 움직여 마을을 벗어난다.

나는 속삭인다.

“엄마! 게악!”(274-275쪽)>


엄마와 게악이 군인에게 끌려갔다. 살아있지 못할 것이다. 큰언니 케이브가 죽고 아빠가 죽고 이제 엄마와 게악마저 죽었다. 남은 가족은 다섯이다. 그마저도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 로레아프를 떠나는 눈에 엄마와 게악의 마지막 모습이 영상으로 떠오른다.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 앞에 서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총구를 겨누고 있다. 먹구름이 몰려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엄마는 덜덜 떨고 있다. 엄마는 운명과 싸워봤자 소용없다는 것, 아무리 애걸해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른 이들이 살려달라고 빌 때, 엄마는 게악을 더 꽉 끌어안은 채 눈을 꼭 감고서 기도를 한다. 엄마는 아빠 얼굴을 떠올리며 기다린다.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 차라리 빨리 끝내게끔 하고 싶은 충동과 싸운다. 얼마나 더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다리다보니 가슴은 희망을 믿기 시작한다. 군인들이 마음을 바꿔 모두 풀어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엄마는 호홉이 빨라진다.

‘아냐, 난 게악을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해. 공포 속에서 세상을 떠나게 할 순 없어.’

다음 순간 군인 하나가 자세를 바꾸는 바람에 진흙이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한 군인이 총을 메고 사람들에게 걸어간다. 땅바닥이 따뜻하고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힐끗 보니 옆에 있는 사내의 바지가 젖어 있다. 군인 하나가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는 곧장 엄마 쪽으로 걸어간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엄마의 눈이 커진다.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친다. 군인이 게악의 어깨를 잡는다. 두 사람이 내지르는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에 울려퍼진다.(277-278)>


1979년 1월 베트남이 쳐들어왔다. 이제는 노동과 굶주림이 아니라 총알과 대포알이 삶을 위협한다. 다행히 웅은 피난길에서 오빠 킴과 언니 초우를 만나 같이 이동을 한다. 이제 열네 살 오빠가 가족의 책임자가 되었다. 오래 전에 헤어진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소식을 모른다. 킴 오빠는 푸르사트에 가서 두 오빠를 기다릴 거라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빠에게 말한다.

‘아, 아빠! 정말 보고 싶어요.’

어두운 하늘에는 잿빛 구름 몇 점이 떠 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나는 구름을 쳐다보며 아빠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천사들은 어디 있어요, 아빠?”

내가 묻는다. 갑자기 구름들이 합쳐지면서 단단한 공들을 만들어낸다. 이 공들은 재빨리 해골 모양을 띠기 시작한다. 그 구름 해골들이 내 위를 맴돌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꽉 조여들어 내 팔로 눈길을 돌려버린다. 그런데 팔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내 살에서 풀이 자라나는 게 아닌가!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린다. 팔에 난 털처럼, 종이를 뚫고 나온 바늘처럼 풀이 내 살갗을 뚫고 나와 쏙쑥 자라고 있다. 그러더니 살이 녹아내리고 피부가 땅속으로 꺼진다. 피부는 서서히 썩어가더니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고 흙과 섞여서 크메르루주의 거름이 돼버린다.

나는 숨을 멈추고 눈을 꼭 감은 채 썩어버린 팔을 꼬집어본다. 아픔이 느껴져 눈을 뜨자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나는 단단히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애쓴다.(292-293쪽)>


피난길에서 요운(베트남 병사)을 만난다. 그 군인은 푸르사트시에 난민수용소가 있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난민수용소에서 사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겨우 수양가족이 되어 그 집으로 옮겨보지만 그 집에서 사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래도 가족 찾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킴 오빠는 저녁마다 일을 마치고 요운의 막사로 가서 새로운 난민들을 만나 두 오빠의 소식을 물어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어느날 킴 오빠 뒤로 큰오빠 멩이 나타났다 그리고 수용소 천막에 가서 둘째 오빠 쿠이도 만났다. 드디어 살아남은 가족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크메르루주와 베트남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살아남은 가족 다섯 명은 프루사트시를 떠나 외삼촌이 살고 있는 크랑트루오프로 돌아간다. 그곳은 푸르사트 보다 몇 주 전에 베트남군에 의해 해방이 되었다 한다. 이후 웅은 큰오빠 멩과 함께 베트남을 거쳐 태국의 난민수용소로 가고 거기서 미국인 후원자를 만나 미국 버몬트주로 간다. 다시 세 형제와 이별을 하지만 이 이별은 강제된 것이 아니다.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이별, 그래서 웅은 5년을 기약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고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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