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바탐방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11

좋은 사람, 나쁜 사람

by 지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2학년 한국어 읽기 Ⅰ(Korean Reading Ⅰ) 과목 시험이다. 어제의 3학년과 거의 비슷하다. 아니 조금 다르긴 했다. 아이들 질문이 더 많았다. 1년 차이인데 이 아이들은 시험 결과에 대해 조금은 더 예민해진 것인가? 시험을 다 치고 난 뒤에 정답을 알려준 뒤 사탕을 두 개씩 나누어주었다. 시험을 치느라 애 썼다는 말과 함께. 그 아이들 사탕 고르고 먹는 모습은 어제의 3학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험을 잘 친 아이나, 못 친 아이나 다 그렇다. 한국에서 가져온 사탕인데 맛이 어떠냐 물어도 그냥 웃기만 한다. 그만큼 아이들은 순박하고 착하다.

나는 이 아이들이, 이곳 사람들이 착하다, 순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아니 이곳에 있는 개를 비롯하여 짐승조차도 순한 것 같아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내가 아직 이방인이기 때문에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좋게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니까. 하지만 여기 아이들을 보면 보편적 생각을 넘어서는 무엇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냥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있는 사람은 나쁘지 않다. 설령 그것이 꾸민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꾸민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꾸민 것이라 할 수 없다. 꾸며서는 결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머리가 아닌 몸이나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모습을 한 번 봤다고 곧장 그 사람이 나쁘다거나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선한 미소는 그 자체로 많은 것, 혹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만 나쁜 행동 그 하나만으로는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지금 여기에서 나쁜 행동을 했다는 것 오직 그 하나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의 집에서, 직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는 자라면서 혹은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나쁜 행동 하나만 보고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섣불리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나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드러나지 않은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연후에 그러한 행동을 한 사람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선한 미소는 그렇지 않다. 그 미소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구태여 그 배후까지 깊이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사무실에서 시험지 채점을 하면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시험 마지막 문제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쓰게 했는데,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글쓰기를 하는 것이 2학년 학생들에게 조금은 무리한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채점을 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학생들이 쓴 글을 보면 편차가 제법 심하다. 내가 이 아이들의 수준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그 이유를 이곳 아이들의 특성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이곳 아이들은 점수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다. 그건 이곳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에 크게 매달리지 않는 듯한 모습과 닮았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자신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얼굴에 늘 웃음을 달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 눈에는 착하고 순하게 보이는 것일 테고. 얼마 전, 박선생님이 시장에 갔다가 망고 네 개를 앞에 놓고 천 리엘에 파는 할머니를 본 적 있다고 했다. 망고 값이 너무 싸서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그 할머니의 얼굴이었다고 했다. 천 리엘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400원이 채 되지 않는데 그 돈을 받고서도 할머니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걸려 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그 적은 돈을 받고서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어 그렇게 환하게 웃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놀랐다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그런 모습들을 보기도 하고 그 모습에 신기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냥 이곳 사람들이 순박하고 착하다는 생각만 했다. 그 배경이 어떤 것인지, 이 사람들의 내면에 저장되어 있는 삶의 유전자는 어떠한 것인지는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했다. 더 많이 만나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다행히 나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이곳에서 만나지 못했다. 정말 사람이 착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좋게만 생각해서 그런지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난 뒤에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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