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바탐방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14

3학년 통역, 혹은 번역 수업

by 지천

3학년 통역, 혹은 번역 수업

3학년 수업. 예정된 30시간이 끝났다. 한 학기가 끝이 난 것이다. 이제 기말고사를 치면 아이들은 방학을 한다. 시험은 다음 주 월요일에 치기로 하고 마지막 수업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교재를 내려놓고 크메르어로 된 대화를 듣고 그것을 한국어로 옮겨 적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일종의 통역 공부를 하는 셈이다.

일전에도 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하다가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가끔 크메르어를 듣고 그것을 한국어로 적어보도록 했다. 그렇게 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크메르어를 듣고 한국어로 옮겨 쓰는 수업은 한국어를 불러주고 그것을 적게 하는 것, 즉 받아쓰기와 많이 다르다. 받아쓰기를 할 경우, 아이들이 글자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한 것만 확인할 수 있다. 불러주는대로 쓰면 되니까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크메르어를 번역, 혹은 통역하는 경우는 많이 다르다. 대화 형식으로 된 방송을 듣고 그것을 한국어로 옮겨 적거나 말을 하게 하는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아이들이 많이 틀리는 것이 높임법이다. 아이들은 이 부분을 어려워하면서도 잘못한다. 가령 크메르어를 한국어로 옮겨 적을 때 이렇게 적은 것을 보게 된다. “제가 그것을 먹을게”, 혹은 “나는 오늘 그곳에 가지 못합니다.”와 같은 문장들 말이다. 물론 ‘나는 오늘 그곳에 가지 못합니다’와 같은 문장은 한국에서도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을 ‘저는’으로 고쳐 말해야 한다.

조사의 문제는 좀더 심각하다. 가령 ‘네 전화번호를 몇 번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조사 ‘은, 는, 이, 가, 을를’은 한글을 배울 때 어떻게 구별해서 쓰는지 반복해서 설명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앞말에 받침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조사를 달리 쓴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3학년이 된 아이들, 그러니까 2년 이상 한국어를 공부한 아이들도 이렇게 잘못 쓰는 일이 더러 있다. 그래서 내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네 전화번호는 몇 번이야?’, ‘네 전화번호를 좀 알려줄래?’ 이렇게 고치고 조사의 사용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한다. 그래도 다음에 하면 비슷한 실수가 반복이 될 것이다. 받아쓰기를 할 때는 이런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받아쓰기를 할 때는 이미 조사가 제대로 사용된 문장을 불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메르어를 듣고 한국어로 바꿔 쓸 때 이런 문제를 확인하고 고쳐주기 쉽다.

수사의 문제 역시 비슷하다. 가령 ‘옷 두 벌에 십 달러입니다’라는 문장을 크메르어로 듣고 그것을 한국어로 쓰게 하면 몇몇 아이는 ‘두 옷’, 혹은 ‘2옷에 10달러’ 이런 식으로 적는 경우가 있다. 역시 받아쓰기를 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옷 두 벌로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메르어를 듣고 한국어로 적을 때는 이런 문제가 비교적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을 고쳐 주었을 때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못 쓴 것이고 그것을 고쳐보았기 때문이다.

2학년 역시 30시간의 수업이 다 끝났을 때 이런 수업을 해 보았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진지했으며 또 흥미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했다. 2학년임에도 3학년 아이들만큼 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이런 수업은 내게도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이렇게 수업을 함으로써 나는 지금까지 배운 크메르어를 다시 떠올려 볼 수도 있고 또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해 봄으로써 내가 배운 크메르어를 더 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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