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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가서 한국어학과에 대해 말하다

by 지천

알람을 아침 다섯 시에 맞춰 놓고 잤는데, 다행히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오늘은 바탐방 인근 고등학교에 학과 홍보를 가는 날이다. 전날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배는 그리 아프지 않고 속도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다. 학교 방문 중에, 혹은 학교 방문을 하러 가는 길에 배가 아프고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데 조금은 진정이 된 것 같았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숙소 로비로 내려가니 벌써 장선생님이 내려와 있다. 시간을 보니 여섯 시에서 겨우 일 분이 지난 시간. 여섯 시에 우리 숙소인 차야 게스트하우스로 차가 오기로 되어 있어서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조금 후 보파 선생님으로부터 아직 학교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문자가 왔다. 그렇다면 차는 약 30분 정도 뒤에 이곳에 올 수 있을 것이다. 장선생님이 음료수 마시고 싶다 해서 같이 근처 가게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길가에 커피를 파는 곳이 있어서 장선생님만 커피 한 잔을 사고 나는 속 불편할까 걱정이 되어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6시 30분이 조금 덜 된 시간에 미니 버스가 왔다. 학교에 늘 세워져 있던, ‘사랑으로’라는 이름을 옆구리에 달고 있는 버스다. 한국의 부영이라는 건축회사가 캄보디아에 기증을 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차는 한국 차가 아니었다. 버스에 올라 인사를 하고 보니 자리는 마지막 줄에 두 개 남아 있었다. 원래 자리가 많지 않은 버스이기는 했지만 탄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우선 외국어학부 학부장인 와타나 선생님과 두 명의 직원이 자리했고, 중국어학과 홍보를 위해 나온 중국인 여성과 코디, 태국어학과 홍보를 위해 같이 가는 태국 여성 한 분과 코디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영어학과의 노교수 한 분이 일행이 되었으며 우리 한국어학과에서는 보파 선생님과 뽄러 선생님, 러티 선생님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어학과는 우리 포함 모두 다섯 명이 함께 가게 되었는데 외국어학부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간다. 처음 고등학교에 학교 홍보를 나간다기에 졸업생이 같이 가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때 내 생각은 우리가 홍보를 나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어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 그러니까 해당 고등학교 졸업생이 같이 가면 좋겠다는 뜻으로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게 잘못 이해가 된 모양이다. 뽄러와 러티는 해당 고등학교 졸업생이 아니고 우리 한국어학과 졸업생이니까.

약 30분 정도 달렸을까? 우리가 가고자 하는 첫 번째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프놈 썸뽀우 지역에 있는 프놈 썸뽀우 고등학교다. 학교에 도착할 무렵 멀리 산이 보이기에 박쥐 동굴이 있는 산 아니냐고 물어보니 그곳이 맞다고 한다. 아하, 여기가 바로 지난번에 두 번 와 봤던 프놈 썸뽀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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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 썸뽀우 고등학교는 역사가 제법 오래된 곳인 듯했다. 건물 앞마당에는 크고 굵은 나무들이 많이 서 있었고 건물 역시 오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건물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첫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천장에 선풍기 두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은 강당이 없어 3학년 각반 교실에 들어가서 설명회를 하는 모양이다. 먼저 와타나 선생님이 바탐방대학교에 대해 길게 설명을 했다. 와타나 선생님이 재미있는 말을 했는지 아이들이 간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진지하게 들었다. 교실 안에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없고 손님인 우리만 있었는데도 그들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으며 친구와 이야기를 하거나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긴 시간에 걸친 와타나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각 학과별로 소개를 했다. 한국어학과에서는 장선생님이 이야기를 하고 보파 선생님이 통역을 했다. 장선생님은 참 조리있게 말을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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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방대학교는 바탐방 지역에서 한국어를 가장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에요. 왜냐하면 바탐방대학교에는 코이카에서 한국인 봉사단원을 파견해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현지인이 한국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한국어를 더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어학과는 K-pop이나 K-drama, K-dance를 비롯하여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며 태권도와 사물놀이 등도 같이 배울 수 있답니다. 그리고 한국어학과에서 공부하면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갈 수 있으며 공부를 더 하고 싶은 경우 한국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공부를 계속 할 수도 있지요. 한국어학과를 졸업하면 한국 기업이나 은행에 취직을 할 수 있으며 한국어 교사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노력을 한다면 한국에 가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는데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

이어진 두 번째, 세 번째 교실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같은 순서로 진행이 되었으며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모습 역시 첫 번째 교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은 순진했으며 이야기를 듣는 자세는 진지했다. 한국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오래 근무를 했던 나는 입시 설명회에서 이렇게 진지한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학교를 찾아온 대학이 어느 학교냐에 따라 아이들의 태도는 많이 달랐고 또 그때마다 대부분 담임 교사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아이들이 잘 듣도록 독려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담임 교사 한 명도 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정말로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으며 이야기가 끝난 뒤 역시 차분하게 질문을 했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한국어학과에 대해 질문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또 많은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 같았지만 한국어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질문은 별로 하지 않았다. 한국어학과에 대해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는 코이카에서 만든 에코백을 선물로 주기로 하고 가져갔는데 첫 학교에서는 그래서 몇 개 주지 못했다. 대신 수요일 사무실 정리를 하면서 찾은 한국 볼펜, 겉에 NUBB(Department of Korean Language)라고 적힌 볼펜을 넉넉하게 가져가서 설명회를 듣는 모든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학생들은 한국어보다 태국어나 중국어 공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건 지리적, 경제적 상황 때문에 그런 듯했다. 바탐방 지역은 태국과 그리 멀지 않고 또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 교실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니 한 학생이 한국어로 인사를 하면서 장선생님과 대화를 시작했다. 자기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배웠다는 한국어가 제법이다. 아니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과 비교해 봐도 크게 손색이 없다. 더 깊이 이야기를 하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그 여학생은 한국어를 제법 잘해서 친밀감을 더 느꼈다. 몇 명의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다음 학교로 이동을 했다. 이동을 하기 전 교문 가까이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교문으로 나가는 길, 시멘트로 포장된 그 길에서 아이들 여러 명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채 도망을 가고 도망가는 사람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신선했다. 고등학교 1학년 정도 된 아이들 같았는데 시멘트 바닥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어우러져 저렇게 뛰어다니며 놀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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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학교는 역시 프놈 썸뽀우 지역에 있는 껌삥뿌이 고등학교였다. 학교가 위치한 곳은 프놈 썸뽀우 고등학교보다 더 시골이었는데 다행히 이곳에는 강당이 있어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설명회를 할 수 있었다. 와타나 선생님은 말로만이 아니라 ppt를 통해 학생들에게 학교를 소개했고 중국어학과 선생님은 중국 대학 홍보영상을 보여주고 난 뒤에 중국어학과 홍보를 했다. 한국어학과 역시 그러했다. 먼저 한국어학과 학생들이 만든 ‘범 내려온다’라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냈고 이어서 학과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꼈던 점, 한국어를 배워서 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국인 봉사자나 졸업생들이 한국어학과를 소개하는 영상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영상의 길이가 좀 길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가장 알차게 한국어학과를 알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각 과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내가 이야기를 했다. 내용은 장선생님이 이야기한 것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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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학교 설명회가 끝났을 때 시간은 열두 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점심은 어떻게 먹나 생각하고 있는데 곧장 이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학교가 있는 썸롯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걸릴 것이라 한다. 그럼 점심은? 속이 좋지 않아 배고픈 것은 잘 모르는데 그래도 끼니 때가 되니 먹을 것을 챙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버스로 한참을 가다가 음료수 한 잔 사서 먹을 시간을 주고 또 잠시 이동을 하다가 점심 먹을 장소를 발견했는지 차를 세우고 내리게 했다. 점심은 바이 쌎 처룩(돼지고기 덮밥), 미리 도시락 형태로 싸 온 것이다. 속도 편치 않고 식사 자리 역시 그리 편한 곳이 아니어서 절반 정도를 먹고 나머지 절만은 남겼다. 대신 놈빵을 조금 더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곧바로 이동했다. 갈수록 산이 많아져서 캄보디아 북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 번째 학교인 썸롯 고등학교는 무척이나 깨끗했다. 건물 앞마당은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오가는 아이들 모습 역시 깔끔했다. 바탐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 오히려 태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곳 고등학교는 첫인상이 무척이나 좋았고 아이들 역시 그러했다. 이곳 역시 강당이 있어서 한꺼번에 설명회를 할 수 있었는데 가장 많은 학생들이 설명회에 참석한 것 같았다. 강당 안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선풍기 몇 대만 돌아가고 있어 많이 더웠다. 서로 몸이 밀착될 정도로 촘촘히 앉아 있는 아이들은 더 더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더운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제일 앞줄에 앉은 우리 일행 역시 덥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설명회를 진행해야만 했다. 다만 빔이 앞 벽과 너무 가까이 달려 있어서 화면이 무척이나 작았는데 그러다 보니 준비한 동영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그게 좀 아쉬웠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고 아이들은 더위를 참아가면서 설명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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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학교. 버스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포장길을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뒤 아담한 학교 교문 앞에 도착했다. 교문을 들어서려다 얼핏 보니 벽에 현판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현판에는 태극기와 캄보디아 국기가 양쪽에 나란히 그려져 있고 중간에는 캄보디아어와 영어로 그 내용을 적어놓았다. 영어로 된 내용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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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ove secondary education by providing young people with ICT skills and knowledge” May 2024

the Right Hands Bab nanum KHEN”

마지막으로 간 학교는 시골 학교여서 그런지 규모가 작있으며 그래서 아담하다는 느낌이 드는 학교였다. 설명회에 참가한 학생도 한 학급 정도의 학생이었으며 그게 3학년 학생의 전부인 듯했다. 그리 좁지 않은 교실에서 설명회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한국어학과를 소개하게 되었다. 먼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느냐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안다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내가 학교에 들어오기 전 담벽에 붙어 있는 협약서를 보았으며 그것이 여러분에게 ICT 교육을 위한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 알고 있다고 했더니 중간에 학교의 교감이 나서더니 46대의 컴퓨터를 기증받아 잘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머지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학교의 아이들은 질문을 많이 했다. 그게 선물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져간 에코백을 다 주기 위한 몸짓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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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회를 마치니 다섯 시가 넘은 시간, 교감 선생님이 컴퓨터실을 구경시켜 주겠다 해서 나와 장선생님, 그리고 보파 선생님이 교감 선생님을 따라 컴퓨터실로 갔다. 작고 아담한 공간에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위로 콘센터가 여러 개 배치되어 있었다. 데스크탑이 아니라 노트북을 기증받았다는데 그 노트북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일지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소중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으리라. 이 공간 역시 기부를 통해 지었으며 얼마 전에 완공이 되어 수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교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밖으로 나오니 우리가 타고 온 차 주변에 바탐방대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어울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잠시 교문 밖으로 나와 담벽에 붙어 있는 협약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다시 교문 안으로 들어와 남자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난 뒤에 버스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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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을 나서 비포장길을 한참 달리고 있을 때 옆자리 보파 선생님이 창 밖을 가리키며 저게 모두 두리안 나무라 했다. 이곳에서 두리안이 많이 생산된다고 하더니, 그 농장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두리안 농장을 보면서 한참을 가는데, 버스가 멈춰 섰다. 어떤 농장 앞인데 우리가 방문했던 학교 교감 선생님의 농장이라는 말을 누군가가 했다. 농장 입구에 걸려 있는 이름이 재미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농장. 우리가 입구로 걸어가니 교감 선생님이 우리를 맞이하러 나오셨다. 덩치가 크고 덩치만큼 목소리가 컸던 교감 선생님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 바깥에 수확한 두리안을 모아놓은 것이 보였다. 가지런하게 줄지어 선 두리안 열매가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두리안 나무가 늘어서 있고 그 나무에서 두리안을 따고 있는 일꾼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이 나무 위에 올라가 막대기 같은 것으로 두리안 열매를 두드려본다. 그리고 익은 것을 골라 따서 아래로 던지면 두툼한 가죽 장갑을 낀 사람이 그것을 받아 수레에 싣는다. 높은 나무에 올라 두리안을 따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위험해 보였는데 그것을 아래에서 받는 사람 역시 쉽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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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건물이 있는 쪽으로 나오니 여자 한 분이 두리안을 잘라서 속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두리안을 먹어보라고 주는데 잠시 멈칫했다. 과연 내가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두리안, 냄새로 악명 높은 두리안, 그래서 우리가 현지적응교육을 받을 때 묵었던 호텔에서는 반입금지물품으로 두리안 사진까지 엘리베이터 입구 벽에 걸어놓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선뜻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한 번 먹어보라 강권하는 말을 이기지 못하고 받아서 입에 넣었는데,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고 그 냄새조차 고약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두리안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다시 한 번 먹어보았다. 역시 괜찮았다. 특별히 단맛이 강하다거나 과일 특유의 신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심심한 느낌이었는데 이것이 사람 몸에 좋다고 해서 그런지 가격이 다른 과일에 비해 무척이나 비싸다 했다. 다른 사람이 산 두리안 역시 먹어보니 냄새가 그리 강하지 않은 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 두리안을 먹은 뽄러 선생님이 숲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속에서 받아주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농담처럼 캄보디아 사람이 외국인도 먹는 두리안을 못 먹느냐고 옆사람에게 말하니, 특별히 예민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렇겠지. 아무리 현지인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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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탐방 시내에서는 두리안 1Kg에 2만 리엘 정도 하는데 여기서는 17,000리엘, 한국돈으로 5,700원 정도 받으니 가격이 싸다. 무엇보다도 농장에서 직접 사면 아무래도 싱싱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두리안을 많이 사는가 보다 생각했다.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나 역시 사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으니까. 다만, 여기서는 이렇게 먹었지만, 가지고 가서 과연 그것을 먹을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아 사는 것을 머뭇거리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쪽 하늘 저녁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는 두리안 사는 것을 대신하여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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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 농장을 떠난 시간이 저녁 7시 무렵, 많이 늦은 시간이다. 이미 해는 져서 사방이 컴컴한데 가야 할 길은 멀다. 두 시간 가까이 가야 한단다. 캄보디아의 밤풍경을 옆에 달고 버스는 달리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 만난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웠다 하면서 하루를 정리했다. 버스가 바탐방 숙소에 도착한 시간을 여덟 시가 훨씬 넘은 시간, 우리를 내려놓은 버스는 학교로 향했고 장선생님과 나는 모퉁이에 있는 식당에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퇴직을 하기 전까지 나는 줄곧 고등학교에서만 근무를 했으며 2009년 8월말까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는 3학년 담임을 많이 했는데 학교를 찾아오는 교수들을 제법 많이 만났다. 물론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 좀 이름있는 대학교에서 학교로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학교로 직접 찾아오는 대학은 대부분 아이들이 크게 선호하지 않는 곳이거나 아니면 2년제 전문대학이었다. 학교에서는 그들을 별로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설명회에 참석하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한참 바쁜 입시철에 아이들을 모으는 일이 번거로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교수들이 진학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의례적인 인사만 건넬 뿐 다들 크게 환영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 벌써 학생을 과 단위로 충원해야 했고 그게 안 되면 그 과는 사라질 수도 있다니 해당 학과 교수들은 얼마나 절박했겠는가. 그럼에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들의 절박함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진학실 출입문에 ‘전문대학 교수 출입 금지’라는 말이 붙어 있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곤 했을까. ‘잡상인 출입 금지’라는 문구와 함께. 물론 실제로 그런 학교가 있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만큼 학교를 찾는 사람이 환영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후 나는 전문직으로, 그리고 학교 관리직으로 일하면서 그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도 그러한 풍경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퇴출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은 학생 충원에 더 열을 올릴 것이 당연할 테니까. 내가 퇴직을 하기 직전에 이미 대구에 있는 4년제 대학 중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가 몇 군데 있었다. 그 학교 중 하나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가 처음으로 고3 담임을 했던 1980년대 후반, 진학실에 한 학생이 찾아와서 갑자기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무슨 일이냐 하니까, 대구에 있는 대학 야간 학과에 합격했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야간에 합격한 것도 감격할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소위 2차 학교였다. 지금은 일반학군으로 편입이 되어 시교육청에서 학생을 배정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연합고사에 떨어진 학생들이 들어오는 학교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야간 대학에 합격한 것에 감격을 할 정도로 당시에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로부터 30년 정도 지났는데 그 대학은 끝내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마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벚꽃이 피는 순서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말이 차츰 현실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바탐방대학교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국립대학이고 바탐방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대학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하지만 바탐방대학교의 위상이 높기 때문에 학생들이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아름답게 미소 짓는 얼굴에서 나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도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고, 당연히 그들을 관리(?)하는 교사도 그 자리에 없었다. 아이들 스스로가 그렇게 했으며 그들의 선한 미소가 그 자리를 의미 있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입학 설명회 때 많은 선물을 가지고 온다. 대부분 대학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물품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것들을 제법 많이 가지고 온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 선물로 특별한 것을 준비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남아 있던 볼펜과 에코백을 챙겼을 뿐이며 학교에서는 생수 작은 것 한 병씩 아이들에게 주었을 뿐이다. 그래도 그들은 진지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물었다. 그 선한 얼굴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밤 9시까지, 무척이나 긴 시간, 먼 길 다녔지만, 그래서 조금은 피곤했지만 기분은 참 좋다.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하루, 함께한 시간이 더 소중하다. 또 하나, 갑자기 배가 아프면 어떻게 할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루를 다녔지만, 다행히 집에 돌아올 때까지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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