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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by 지천

이 아이들과 다시 수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

10월, 학생들은 한 학년씩 진급했다. 3학년 아이들이 방학을 마치고 4학년으로 진급을 한 뒤 맞이한 첫 시간, 두 달 이상 방학을 지내고 온 아이들이라 나도 반가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 수업 시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슨 책으로 수업을 하는지 몰라 절반이 넘는 아이가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두 명이 하나의 책으로 공부를 하게 하려고 해도 그것이 안 될 정도였다. 그래서 일단은 방학을 지낸 소감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단원의 제목 ‘여건이 된다면 외국에서 1년쯤 살아봤으면 해요’에 나오는 ‘-는다면/-ㄴ다면/-다면’을 사용해서 문장 만드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안치환이 부른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를 떠올렸고 그 노래를 들려주면 아이들이 이 단원을 공부하는데 흥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유투브에서 안치환이 부른 노래를 찾다가 우연히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신부를 앞에 두고 그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발견했다. 대학교 4학년, 결혼에 대해 관심을 가질 나이라는 생각에 그 영상을 먼저 보여주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생각대로 아이들은 꽤 집중해서 그 영상을 보고 또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 가사를 공책에 적도록 했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이 단원을 공부하는데 썩 도움이 되었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그 자체가 굉장히 시적이면서 또 결혼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잘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노래 가사도 열심히 적었고 또 가사 적기를 끝내고 다시 본 안치환의 공연 실황 장면을 집중해서 보았다.

그리고 ‘-았으면/-었으면 하다’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는 활동 중 결혼을 주제로 한 것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어볼 수 있었다. 내가 ‘○○씨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저는 ~한 사람과 결혼했으면 해요.’라고 답을 하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은 ‘착한 사람과 결혼했으면 해요’, ‘능력이 있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해요’와 같은 답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저는 스물 일곱 살에 결혼했으면 해요,’ ‘저는 서른 살에 결혼 했으면 해요’라고 답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했으면 해요’라는 구절은 제대로 활용을 한 것이라 칭친을 해 주면서 ‘왜 서른 살이에요?’ 하고 물으니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면 그때가 되어야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란 대답을 했다. 그렇겠지. 나도 서른한 살에 결혼을 했으니까. 그래도 결혼을 하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다행인가? 여자 아이 두 명은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라고 대답했다. 파비와 피싸이가 그들이다. 파비는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지금 중국어를 같이 공부하고 있다. 어쩌면 중국어 공부에 공을 더 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파비는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 문학과 관련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피싸이는 만화에 취미와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에니메이션 작가로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유학을 간 세 명을 빼고 4학년에 진급한 사람은 모두 14명, 그 중에서 븐탄은 학교에 잘 나오지 않으니까 13명이 대화에 참여했는데 그 중 두 명의 아이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대답했다. 한국에 비해서는 적은 숫자일 수 있겠지만 캄보디아에서는 듣기 힘든 대답이다. 캄보디아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결혼 연령도 점차 늦어지고 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를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지고, 그래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당위나 의무에서 선택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든 시간이었다.

다시 이곳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정조 관념이 강하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의 생각 역시 그러하단다. 실제로 학교 안에서 아이들 생활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것을 많이 느낀다. 일 년 가까이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흔히 말하는 CC, 캠퍼스 커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유일하게 3학년 두 아이가 공식적으로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 정도다. 수업 시간에 그 여자아이는 자신이 남자아이 누구를 좋아한다고 하고 남자아이도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후에도 두 사람이 같이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학과 내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가끔 연못 옆으로, 혹은 캠퍼스 어디에서 남학생과 여학생 두 사람이 다정하게 걷는 모습을 볼 때도 있지만 그리 흔한 풍경은 아니었다. 실제로 수업을 할 때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면 아이들은 대개 쑥쓰러워 하면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가끔 아이들이 짖궂게 ‘00씨는 남자친구가 있어요’라고 말해도 그 아이는 얼굴만 붉힐 뿐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흔들곤 했다. 표정을 보면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아이는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이성을 만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그래서 거의 없다. 대학생이면 성인이고 캄보디아의 경우 스무 살 정도에 결혼을 하는 경우가 흔한데도 아이들은 연애에 대해, 그리고 이성 친구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 가끔 뽀뽀나 키스와 같은 단어가 나올 때에도 아이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곤 한다. 이런 점이 한국의 대학생과 많이 다르다. 아이들이 순수해서 그런지, 아니면 이성과의 만남에 대한 사회적 금기 같은 것이 아직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아이들은 분명 이성과의 만남에 대해 그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내 눈에는 그게 순수함을 드러내는 몸짓으로 보였다. 그들이 즐겨 보는 한국 드라마나 좋아하는 한국 노래에 무척이나 열중하는 아이들을 보면 사회적 금기와 같은 것이 이들의 행동을 크게 제약하는 시대는 지나간 듯하다. 한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문화에 열려 있는 아이들, 내면에는 어느 정도 사회적 분위기, 특히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무시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연애, 혹은 사람 사귀는 일을 더 이상 크게 구속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시내에서 여학생을 만나는 것은 당시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로는 금기에 가까웠다. 비록 그곳이 빵집과 같은 개방된 곳이라 하더라도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 내가 생활했던 고등학교 아이들도 교내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이 변한 세상에서 캄보디아의 아이들 역시 자연스럽게 변화의 흐름에 따라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수줍음이 사회적 금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순수함에서 나온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들과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한다.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오늘은 바탐방대학교로 출근하는 마지막 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권선생님과 오선생님이 인사를 한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일이라고. 내가 그랬다. 퇴임을 하고 여기 와서 1년 동안 출근과 퇴근이 있는 생활을 했는데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며 당연히 출퇴근이라는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후의 삶이 어떨지 아직 결정된 것이 없기에 확정해서 말하기는 뭣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출근하고 퇴근하는 생활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해서 한 말이다.

한 주를 돌아보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막바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월요일부터 교실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아이들과 식사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맥주를 마시기도 했지만 아이들과의 만남은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정리라는 말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3학년 마지막 수업. 2교시 90분 동안 미처 끝내지 못한 단원 수업을 하고 3교시에 작별 인사를 했다.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10분짜리 동영상을 같이 본 후에 문병란 시인의 시를 가수 김원중이 노래한 ‘직녀에게’를 들려주었다. 노래를 듣고 난 뒤에 가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남북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란 말과 함께 2022년 7월, 운암고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한 작은 콘서트 때 내가 불렀던 노래를 들려주었다. 역시 ‘직녀에게’란 노래였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진지하게 듣고 또 다소 감동적인 표정을 짓기도 했다. 노래가 아름답고 슬퍼서 그랬을 수도 있고 또 나와의 이별을 생각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에는 교실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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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시간이 참 안타까웠다. 일 년만에 떠날 수밖에 없는 내가 안타까웠고 인연을 그렇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 모습이 더 안타까웠다. 코이카 봉사 단원은 파견 기간이 일 년이고 일 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길어도 이 년 이상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은 단원들은 연장을 하지 않고 일 년 파견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간다. 나 역시 그러해서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별이 너무 잦다. 물론 이별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더 나은 인연을 만들어 갈 수도 있을 테지만 잦은 이별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서로를 알아가는데 일 년의 시간은 무척이나 짧고 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는데도 일 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물론 후임 단원이 빈 자리를 메우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 년을 같이 공부하는 것과 비교를 하면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도 그렇다.

화요일, 수업이 없는 날이지만 출근을 해서 아이들 중간고사 성적, 과제 성적을 산출해서 입력을 했다. 그리고 귀로 여행과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수요일, 2학년 아이들과 작별을 했다. 3학년 교실에서 했던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에 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했다. 달랐던 점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비타와 니싸이 그리고 디나가 나를 안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대학 생활 첫 일 년을 나와 함께 온전하게 보냈으니 나도 이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울컥했다. 니싸이가 눈물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년에 꼭 한국에 갈 테니까 그때 만나자고 한다. 나도 등을 두드려주면서 꼭 오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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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후 두 시 삼십 분, 우체국에서 보파 선생님을 만나 같이 짐을 부쳤다. 그 과정이 복잡해서 나 혼자서 했다면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았다. 옷과 책, 그리고 비상 물품과 신발 등 내가 부치려는 짐을 다 풀어놓고 종류별로 무게를 달고 또 건전지가 들어있는 제품들은 다 골라냈다. 그 모든 과정을 보파선생님과 담당자가 크메르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했는데 보파 선생님이 없었다면 영어로 소통을 하며 짐을 부쳐야 했기에 그 과정이 쉽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목요일, 4학년과 마지막으로 수업을 하는 날이다. 역시 2교시에는 교재를 들고 수업을 했고 3교시에 노래를 들려주고 또 내가 마지막 학교였던 운암고에서 부른 노래를 영상으로 보여줬다. 그런데 4학년이라 달라서인가, 아이들이 직접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순간 나도 그 말에, 그 분위기에 넘어가 노래를 불렀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아이들은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올 무렵 남자인 니가 나를 안고 번쩍 들어올린다. 나도 나머지 아이들을 가볍게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렇게 바탐방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하는 수업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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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직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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